!시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문태준

kiku929 2015. 11. 10. 19:35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문태준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

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

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

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

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

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

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

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

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

 

 

-문태준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창비, 2015.4

 

 

 

 

 

 

 

*

 

여기까지 타자를 치고 잠시 멈추었다.

여러 상념이 지나간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마지막 순간까지 보았지만

아버지에게 나의 마지막 얼굴은 훨씬 그 이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혼자서 오랜 시간 당신만의 깜깜한 세상에서 머물다 가셨다.

그곳은 절대 고독의 공간...

죽음을 마주하고 불빛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 혼자 배 위에서 표류하는 그 느낌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

 

아무리 부대끼며 함께 살아도 우리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건강할 때는 그렇게 외롭거나 슬프지도 않다.

하지만 아플 때에 통감하게 되는 그 사실은 두려움 자체다. 암흑이다.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 것인지를...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

 

요 며칠 문태준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다.

쌀쌀해져서일까.

따뜻하고 편안한 시들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