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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는 성실하다 / 김영승

kiku929 2015. 11. 11. 22:56

 

 

 

 

                                                                                        사진  출처, <다음 백과사전>

 

 

살구는 성실하다

 

 

김영승

 

 

인간이 만든 관념과 관념어를

돌려준다 살구는 성실하다

살구에게서 추상하여 표상한 관념은

살구에게

 

살구에게서 사악하다거나

야비하다거나 하는

관념은 추상되지 않는다

살구는 성실하다

 

살구는 성실하고 근면하고

 

비 온 뒤 적당히 갠 아침

살구나무는 가령

剛毅木訥*이라는 말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조차도 성실한 살구에겐따면, 아니 털면한 가마는 나올 듯한우렁찬 파도소리 같은 살구나무

 

일단 늘어진 가지에서네 개를 따 주머니에 넣고나는 또 하염없이 살구가 없는 길을돌아서 돌아왔다

 

*『論語』, 子路篇 27장

 

 

- 김영승 시집 『화창』 / 세계사.2008

 

 

 

 

 

 

 

*子曰 剛毅木訥 近仁(자왈 강의박눌 근인 ; 공자 말씀하시기를 ‘강하고 굳세고 무뚝뚝하고 어눌한 것이 인에 가까우니라.’ 하셨다.)<논어論語 자로子路>  네이버의 용어해설에 의하면  강의박눌이란 "강직하고 굳세어 굽히지 않고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음"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시를 쓰다보면 자꾸만 관념으로만 쓰게 된다.그렇게 쓰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편하다.선생님은 시는, 시만의 '시적 논리'와 '시적 사유'가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그래서 시적 논리나, 시적 사유가 미흡한 나에게 시를 쓰는 일은처음 배우는 외국어 같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시란 '자연의 언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살구나무가 살구를 맺는데는 추상이나 관념의 세계가 아니므로.정직하고 성실하고 꾸밈없이 써야만 살구 열매같은 시 한 편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이 시는 "剛毅木訥" 같은 정신으로 시를 쓰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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