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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지키다 / 박시하

kiku929 2015. 11. 13. 10:02

 

 

                                                                                        동피랑의  벽화

 

 

사랑을 지키다

 

 

박시하

 

 

 

수박을 들고 커다랗고 짙은 수박을 들고
붉은 물이 가득 든 초록 수박을 들고

 

삶보다 무거운 수박을 들고 땡볕 아래 걸었네
오래 걸었네 뜨거운 길을 걸었네

 

짙고 푸른 껍질을 쪼개면 시월할까
그 붉은 물은 달고 시원할까

 

멀고 먼 수박 껍질 속의 세계를 향해 걸었네

 

던져버릴 수 없어 떨어뜨릴 수도 없어
둥글고 커다란 수박은 깨져버릴 테니까
짙고 푸르지만 수박의 껍질은 연약하고
내 팔은 가늘고 등은 굽었다

 

터벅터벅 걸었네
멀고 먼 길 끝이 기억나지 않는 노란 길을
달콤하고 붉고 무거운 그대
아!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목이 마르지 않았네 눈물이 흘렀네 멀고 먼
지워지고 말 꿈에서

 

 

-박시하 시집 『눈사람의 사회』

 

 

 

 

*

수박을 들고 가는 그 순간을

사랑으로 저리 아름답게 표현해 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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