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허연
적어놓은 건
반드시 벌로 돌아온다
밤새 쓴 편지를
감히 다시 볼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세상에 모든 편지에는 죄가 많아
인간은 밤새 적은 편지에
초라해진다
편지를 받은 모두는 십자가에 매달린다
적어놓은 것이니
세상에 남는 법
적은 자들은 늘 외롭고
벌을 받는다
적어놓은 죄, 기록한 죄
편지는 오늘도 십자가에 내걸린다.
적은 자의 하루는 슬프고
내걸린 편지는 세상의 어느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남겨진다
편지를 쓴 죄
그리움 같은 것을 적은 죄
-허연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 / 문학과 지성사,2012
*
사라져야 하는 것을 사라지도록 놔두지 않은 죄,
그 죄를
글로 적어 스스로 죄인임을 증거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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