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편지 / 허연

kiku929 2015. 12. 16. 22:09

 

 

 

 

 

편지

 

 

허연

 

 

 

적어놓은 건

반드시 벌로 돌아온다

 

밤새 쓴 편지를

감히 다시 볼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세상에 모든 편지에는 죄가 많아

인간은 밤새 적은 편지에

초라해진다

 

편지를 받은 모두는 십자가에 매달린다

 

적어놓은 것이니

세상에 남는 법

적은 자들은 늘 외롭고

벌을 받는다

적어놓은 죄, 기록한 죄

편지는 오늘도 십자가에 내걸린다.

 

적은 자의 하루는 슬프고

내걸린 편지는 세상의 어느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남겨진다

편지를 쓴 죄

그리움 같은 것을 적은 죄

 

 

-허연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 / 문학과 지성사,2012

 

 

 

 

 

 

 

*

사라져야 하는 것을 사라지도록 놔두지 않은 죄,

그 죄를

글로 적어 스스로 죄인임을 증거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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