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꽃 <다음 백과>에서
봉숭아를 심고
장석남
조그만 샛강이 하나 흘러왔다고 하면 될까
바람들이 슬하의 식구들을 데리고
내 속눈썹을 스친다고 하면 될까
봉숭아 씨를 얻어다 화분에 묻고
싹이 돋아 문득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 일이여
돋은 떡잎 위에 어른대는
해와 달에도 겸하여
조심히 물을 뿌리는 일이여
후일 꽃이 피고 씨를 터뜨릴 때
무릎 펴고 일어나며
일생을 잘 살았다고 하면 되겠나
그중 몇은 물빛 손톱에게도 건너간
그러한 작고 간절한 일생이 여기 있었다고
있었다고 하면 되겠나
이 애기들 앞에서
- 장석남 시집『젖은 눈』/ 문학동네,2009
*
꽃씨를 심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싹을 기다리는 그 마음 앞으로
이 시는 나를 데려다준다.
애기라고 부르는 말이 참 좋다.
애기, 애기, 애기...
자꾸 부르다보면 마음이 애틋해진다.
무언가 보살펴줘야 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나를 위해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
베란다에는 내가 키우는 우리 애기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다.
춥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나는 매일마다 잠든 모습을 바라본다.
2월의 햇살이 베란다 깊숙이 찾아오면 그때부터 우리 애기들은 실눈을 뜰 것이다.
나의 겨울은 이렇듯 매사가 조용하다.
그런데 움직임도 없이 뭔가가 자꾸만 안으로 밀고 들어 온다
무얼까? 이런 기분은...
꽃들 앞에서 무릎 펴고 일어날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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