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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 조용미

kiku929 2016. 2. 24. 10:24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조용미



꽃 피운 앵두나무 앞에 나는 오래도록 서 있다

내가 지금 꽃나무 앞에 이토록 오래 서 있는 까닭을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까

부암동 白沙室은 숲 그늘 깊어

물 없고 풀만 파릇한 연못과 돌계단과 주춧돌 몇 남아 있는 곳


한 나무는 꽃을 가득 피우고 섰고

꽃이 듬성한 한 나무는 나를 붙잡고 서 있다


이쪽 한끝과 저쪽 한켠의 아래 서 있는

두 그루 꽃 피운 앵두나무는

나를 사이에 두고 멀찍이, 아주 가깝지 않게 떨어져 있는데

바람 불면 다 떨구어버릴 꽃잎을 위태로이 달고 섰는

듬성듬성한 앵두나무 앞에서 나는


멀거니 저쪽 앵두나무를 바라보네

숨은 듯 있는 별서의 앵두나무 두 그루는

무슨 일도 없이 꽃을 피우고 있네

한 나무는 가득, 한 나무는 듬성듬성


나는 두 나무 사이의 한 지점으로 가서 가까운 꽃나무와

먼 꽃나무를 천천히 번갈아 바라보네

앵두가 열리려면 저 꽃이 다 떨어져야 할 텐데

두 그루 앵두나무 사이에 오래 서 있고 싶은 까닭을

나는 어디에 물어야 할지

무슨 부끄러움 같은 것이 내게 있는지 자꾸 물어본다



- 조용미 시집『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 문학과 지성사 ,2007






*

이곳과 저곳, 사이에 나는 서 있고

이곳과 저곳, 어느곳으로도 나는 선뜻 기울어질 수 없고,

이러한 나는

그 사이에서 시를 읽고 그리워하고

가끔은 이쪽과 저쪽을 멀리서 바라보며

후회같은 것을 하기도 하면서

살아갈 지 모른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