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조용미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박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緣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싸여 마늘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 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기억의 행성』/ 조용미, 문학과 지성사,2011
무엇이든 오래 두면 형과 질은 변한다.
더구나 두 가지 이상이 섞인다면...
사람의 마음 또한 그러하리라.
지금 부르는 이름은 예전 내가 부르던 이름 또한 아닐 것,
마늘꿀절임처럼 다만 따뜻하게 덥혀주는 이름,
그것이 추억의 이름이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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