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오빠
김언희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 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 하고 , 십 년도
넘었어, 난 저 개 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
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 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
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
를 해대면서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 주었어, 끊어질듯이 울어대는 아
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 ...... 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 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
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 오빠, 찍 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 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
층층이 찍 소리 없이 섹스들을 해, 찍 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새끼들이 됐나 봐, 껍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싸게 만들어,
하느님도 오줌을 싸실 걸,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
*
오늘 강의 중,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셨다.
"시는 이래이래서 좋다. 시를 마치 시체처럼 해부하고 분석해서 그러고 보니 좋다 할 땐 이미 늦었다.
그때는 이미 좋은 시가 아니다. 그냥 어쩐지 좋고, 그냥 어쩐지 맘에 드는 그러한 시를 써야 한다."
이 '어쩐지 좋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고.
그런 시 중 하나가 바로 이 '보고 싶은 오빠'가 아닐까 싶다.
해부하고 분석하기가 쉽지 않은 시, 시어들이 직접적이고 강렬하여 조금은 불편해질 수도 있는 시,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쩐지' 슬픔이 깃들어 있다.
여기서 오빠를 나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
화자에게 과거가 되어버린 생이 충만했던 한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으로 읽어본다.
죽은 남편일 수도, 죽은 애인일 수도 있는...
그래서 아직 붉다는 그 마음이 도리어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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