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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빙하시대2 / 허연

kiku929 2010. 1. 16. 12:38

 

   

 

 

 슬픈 빙하시대 2

 

                             허연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날 그 병과 헤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한번 앓았던 병은 집요한 이념처럼 사라지지 않는

 다. 병의 한가운데 있을 때 차라리 행복했다. 말  한마디가

 힘겹고, 돌아눕는 것이 힘겨울 때 그때 난 파란색이었다.

 

  혼자  술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나이가  됐다. 그들의

 식도를 타고 내려갈  비굴함과  설움이, 유행가  한 자락이

 우주에서도 다 통할 것같이 보인다. 만인의 평등과 만인의

 행복이  베란다 홈통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만큼이나 출처

 불명이라는 것까지 안다.

 

  내 나이에 이젠  모든 죄가  다  어울린다는 것도  안다. 업

 무상 배임, 공금횡령, 변호사법 위반. 뭘 갖다 붙여도 다 어

 울린다. 때 묻은 나이다. 죄와 어울리는 나이. 나와 내 친구

 들은 이제 죄와 잘 어울린다.

 

  안된 일이지만 청춘은 갔다.

 

 

 *허연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사

 

 

 

 

 

세상을 안다는 것은 상처없이는 이를 수 없는 길이어서

난 원치않게도 내가 세상을 알아야 할 때마다 슬퍼졌다.

 

모르면 모를수록 우린 무엇에든 마음을 활짝 열게 된다.

머뭇거림 없이 단숨에 어딘가에 훌쩍 뛰어들 수 있는 마음...

난 그걸 순수라 말하고 싶다.

 

바보처럼  피투성이가 된다해도

다신 뛰어들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해도

처음이라는 단 한 번은 순수했기에 매번 아름다웠다.

청춘이 그랬고 첫사랑이 그랬듯이.

 

이젠 청춘도 가고 사랑도 갔다.

알아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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