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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 / 문정희

kiku929 2012. 7. 10. 11:25

 

 

 

 

    

 

 

 

 

유방

 

 

문정희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지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가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을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속에

 

꼭꼭 싸매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놨던 유방

 

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

 

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주셨듯이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오랫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 지금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안고 서서

 

이 유방이 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을 촬영하며

 

 

 

 

 

 

 

나를 눈물 흘리게 만든 시...

 

한 때는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자식의 것이었던 유방,

나의 것이었으면서도 타자에 의해 존재해야 했던 여자의 몸,

 

따뜻한 체온에 길들여진 그 유방이 차가운 기계 앞에서야

비로소 여자는 자기의 것임을 슬픔으로 인식하게 된다.

 

여자라면 이런 느낌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유방암을 검사할 때마다 그 낯선 이질감의 감촉과

자신에게 있어 은밀하게 숨겨져왔던 수줍은 그것이

무참히 드러난 채 기계속으로 압축되어질 때의 그 허탈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