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감별하기 / 이희중
아웃사이더 감별하기
이희중
잘 나가는 폴 매카트니나 존 레넌보다는
그들이 불쌍해 마지 않던
음울한 조지 해리슨, 또는 못난 링고 스타를 더 좋아한 사람
해바라기의 보스 이주호보다는
그의 마음에 따라 자주 교체되던
짝궁한테 더 눈길이 가던 사람
비틀즈나 해바라기보다, 우연히 들른 술집
손님들의 잡담 너머에서, 그냥 켜둔 테레비처럼 노래한 다음
갈채 없이 슬며시 퇴장하는
삼류 가수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는 사람
또는 혼자 천천히 박수치는 사람
김일보다 장영철을 더 좋아한 사람
프로레슬링은 쇼다, 라는 그의 말을 믿은 사람
홍수환보다는 염동균을 더 좋아한 사람
말년에 그가 오른손을 접고 싸웠다는 사실을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는 사람
그들보다, 세미파이널을 피 튀기며 뛰는
삼류 복서들이, 또 그 세미파이널이
케이오로 일찍 끝났을 때에 대비하여
뛸 수 없을지도 모를 싸움을 준비하는 복서들이
있다는 사실을 더 진지하게 기억하는 사람
안정환보다는 윤정환을 더 좋아하는 사람
우리편이 골 넣었을 때
벤치에 앉은 후보선수들의 표정을 살피는 사람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프로 선수,
1군이 되지 못한 2군 선수들을 더 걱정하는 사람
현대차 안 타고 굳이 대우나 쌍용차 타는 사람
아주 옛날에는, 일등하던 오비보다는 크라운을 더 좋아했고
얼마 전, 크라운이 하이트로 일등하자 이젠 오비를 마시는 사람
대접받는 애완동물 보면 속이 거북한 사람
꼬리치는 것 보기 싫어 개를 안 키우는 사람
조세형이나 신창원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던 사람
이종대, 문도석, 그리고 지강헌 또는 비지스의 홀리데이
이런 이름들을 술자리에서 꺼내기를 즐기거나
누가 꺼내는 것을 반기는 사람
엄숙한 자리에 앉으면 사지가 뒤틀리는 사람
여간해서 넥타이를 안 매는 사람
평창동, 압구정동, 대치동이 남의 나라 같은 사람
학창 시절, 선생이 이름 기억해 부르면 불편했던 사람
반장 패거리보다 사고뭉치들과 어울리던 사람
자신이 바로 사고뭉치였던 사람
창간할 무렵에는 안 보다가 요즘 와서 한겨레 보는 사람
돈 먹여 아들 군대 안 보낸 사람은
대통령 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군대 갔다온 사람
통일을 사심 없이 바라는 사람
이 세상이 뒤집혔으면 하고 가끔 바라는 사람
실현 가능성이 아주 없기 때문에 더 자주
더 편안하게 전원주택을 꿈꾸는 사람
아웃사이더이다, 아니다에 관심 없는 척하지만
이런 시 읽으면서 동그라미 치며 자신을 감별하고 있는 사람
맞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동그라미를 치고 있었으니
나는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다.
내가 스포츠를 싫어하는 것도 패자의 마음이 더 읽혀지기 때문이고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가진 게 없어 뒤로 밀리는 사람이
어느날 잘 되는 것을 보면 내 일처럼 기쁘고
어떤 기쁜 순간에도 그 때문에 한 쪽에서 슬픈 사람이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려
맘껏 환호할 수가 없고,
남들 돈 버는 일에 관심을 가질 때 나는 시집이나 펼치고 있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끼가 없어서
잘 끼지도 못하고 웃기지도 못하는 연예인에게 더 관심이 가고,
서점에 가도 베스트셀러의 책보다는 한 쪽 귀퉁이에서 팔리지 않을 책들에 눈길을 주며
일부러 그런 책을 사게 되고,
근사한 포장의 선물을 들고 퇴근하는 남자보다 붕어빵이나 군고구마 봉지를 손에 들고
퇴근하는 남자가 훨신 멋있고....
그래도 난 이런 내가 좋다.
세상살이에 온도를 높여주는 건 바로 이런 아웃사이더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의외로 아웃사이더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는 것도
내가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일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