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미술작품 안의 키스…에로티시즘의 역사 [출처: 중앙일보]

kiku929 2018. 7. 19. 15:07
[더,오래] 송민의 탈출, 미술 왕초보(7)

내가 태어난 1960년대엔 미니스커트 입는 것을 단속했다.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이유에서였다. 내 이름은 부모님의 재치로 미니와 비슷한 민이가 됐다. 
  
20대에 본 영화 ‘시네마 천국’은 키스 장면을 온통 삭제하던 1940년대 이탈리아를 그렸다. 그래서 찾아본 키스의 역사에는 놀라운 사실도 있었다. 1562년 이탈리아는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서로 입맞춤하면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아테네 조각가 미론 <원반 던지는 사람>,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조각가 미론 <원반 던지는 사람>, 기원전 5세기



누드 미술의 기원은 여성 아닌 남성  

고대 로마 시대에 성적인 사랑의 표현이 된 키스는 애정·존경·친밀·인사를 표현하는 몸짓언어다. 문학이나 미술에서 남녀의 사랑과 관련한 성적 표현이 에로티시즘이다. 이는 그리스 신화의 연애와 사랑의 신인 에로스에서 유래한다. 키스만 해도 그랬으니 누드는 어떠했을까? 
  
기원전 그리스 남성은 늘 옷을 벗고 운동을 했고 올림픽 경기 때도 그랬다. 신이 만든 인체의 조형미를 칭찬하는 데 열을 올린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누드 조각상이 만들어졌다. 몸을 드러내는 것이 완전한 시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요즘 그리스 남성에게 그리스 조각 같다고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미의 기준이 달라진 때문이지 싶다. 
  

크니도스 <아프로디테>, 기원전 350년

크니도스 <아프로디테>, 기원전 350년

  
여성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여성의 누드는 금기였다. 이렇듯 누드 미술의 기원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 그 금기를 깬 것은 기원전 350년경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였다. 그는 터키 옛 도시 크니도스의 요청으로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만들었다. 여신의 전체 누드상은 세계에서 처음이었다. 지중해 일대에 소문이 떠들썩하게 돌았다. 이 조각상을 보려고 관광객이 몰려들어 도시가 진 빚을 모두 갚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기원전 380년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즘 그리스 사람들은 벌거벗은 남자를 보는 것을 추잡하고 우습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기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옷을 입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5세기부터 15세기의 중세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의 육체에 대해 신의 완벽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세 미술에서는 관능적 표현이 모습을 감췄다. 주로 성경 이야기가 그림의 주요 소재가 됐는데, 유일한 여자인 마리아마저 중성적으로 그려졌다. 
  
1353년 보카치오는 10일 동안의 이야기라는 뜻인 ‘데카메론’을 썼다. 육체적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내용의 풍자 소설이다. 그는 고뇌와 우울증에 사로잡힌 사람, 특히 여성을 위로하고자 쓴다고 머리말에 밝혔다. 
  
이런 중세의 금욕적인 분위기에 반전이 있었다. 13~14세기 이탈리아의 역사적인 도시인 ‘산 지미냐노’의 포데스타 궁 행정관에는 부부간 성교를 연상시키는 ‘세속적 사랑의 모든 장면’ 풍속도가 그려졌다. 아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만 에로티시즘은 필요하다는 의사들의 권장에 따른 것이었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

  
16세기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도 성교육 교재의 목적으로 쓰였을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르네상스에 와서야 인간과 여성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16세기 후반에야 신화 종교 소설의 주인공이 아닌 개인의 경험을 그리기 시작한다. 
  

브뤼헐 <농민의 결혼식 춤>, 1607년

브뤼헐 <농민의 결혼식 춤>, 1607년

  
17세기 브뤼헐의 ‘농민의 결혼식 춤’은 춤을 추며 포옹하거나 관능적인 표현이 있다. 당시엔 도덕적으로 문제 삼아 이를 가렸다가 1943년에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이쯤 되면 외설과 예술의 기준이 뭘까 궁금해진다. 프랑스 예술평론가 알렉상드리앙은 ‘에로틱 문학의 역사’에서 말한다. 외설은 육체적인 욕망을 비하하고 불결하고 저속한 어휘로 표현한다. 반면 예술이 그린 에로티시즘은 인간의 육체적 욕망에 대해 바람직한 시각으로 보고 아름다움 속에서 보여준다. 
  

오귀스트 로댕 <키스 (The kiss)> ,대리석 ,1886년

오귀스트 로댕 <키스 (The kiss)> ,대리석 ,1886년

  

로댕의 ‘키스’, 진정한 에로티시즘 표현   

1886년 로댕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문’을 읽고 ‘키스’ 누드 조각상을 만든다. ‘여기에 들어선 자 희망을 버려라’란 비탄을 그린 시가 지옥문인데, 13세기 이탈리아의 비극적 주인공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실화를 담았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아픔이 있기에 이 시는 더욱 긴장감이 있다. 불륜으로 고민에 빠진 로댕은 단테의 책을 1년간 읽고 조각상을 만들었다. 
  
단테는 왜 지옥문에서 이런 얘기를 다루었을까? 에밀리 디킨슨은 이별이야말로 우리가 지옥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로댕의 누드 조각상은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하다. 조르쥬 바타이유는 말한다. 금기를 어기려는 충동과 금기 밑바닥에 깔린 고뇌를 동시에 느낄 때 진정한 에로티시즘을 경험할 수 있다고. 그래서일까. 로댕의 ‘키스’는 사랑을 묘사한 가장 위대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The Kiss)>, 1908년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The Kiss)>, 1908년

  
1908년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는 개인의 경험을 그린 작품이다. 1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은 이 그림을 좋아하고, 이 그림 앞에선 두 사람의 동작을 따라 하며 사진 찍기를 즐긴다. 
  
키스의 황홀함과 행복한 연인의 마음을 금색으로 표현했다. 꽃길이 두 사람 발밑에 펼쳐져 있지만 여자는 낭떠러지 앞에 있다. 남자가 조금만 잘못해 중심을 잃는다면 여자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 클림트의 내면을 담은 것일까? 그가 느낀 사랑의 기쁨과 아픔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신윤복 <월하정인>, 1793년

신윤복 <월하정인>, 1793년

  

파격이 돋보이는 신윤복의 ‘월하정인’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조선에는 화려하고 부드러운 붓의 흐름이 유려한 혜원 신윤복이 있다. 혜원의 ‘월하정인’은 달 아래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남녀 간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위해 당시에 전혀 쓰지 않던 다양한 색채로 표현했다. 조선 후기 서울의 평범한 인물의 일상, 복식과 문화를 담았다. 기법과 내용 모두 당시엔 파격이었다. ‘단오풍정’의 남녀의 에로티시즘의 모습을 보는 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종전의 키스 >, 1945년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종전의 키스 >, 1945년

  
19세기에는 여자 혼자 돌아다니면 매춘부로 오해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영국 신문에는 자신의 딸을 매춘부로 오해했다고 아버지들이 노발대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1945년 키스 사진이 신문에 커다랗게 실려 온 세계에 화제가 됐다. 대낮의 뉴욕거리에 해군과 간호사가 키스하는 사진이다.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의 ‘키스’다. 1945년 종전을 상징하는 환희를 담았기에 세상은 이 키스에 손뼉을 쳤을 것이다. 
  

로베르 두아노 <호텔 드 빌 앞의 키스>, 1950년

로베르 두아노 <호텔 드 빌 앞의 키스>, 1950년

  
1950년 로베르 두아노의 ‘호텔 드 빌 앞의 키스’처럼 키스는 파리와 세계의 일상이 됐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키스>, 1961년

로이 리히텐슈타인 <키스>, 1961년

  
1961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키스’다. 많은 이들이 보던 만화의 한 장면에서 끌어왔다. 팝아트의 시작인 것이다. 뜨거운 눈물로 화해하고 열정의 키스를 나누는 모습이 어떠한가? 괴테의 명언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영혼만이 행복하다. 
  
송민 갤러리32 대표 gallery32@naver.com 

[출처: 중앙일보] 미술작품 안의 키스…에로티시즘의 역사

'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釣而不網 弋不射宿   (0) 2019.03.06
나비 박사 석주명  (0) 2019.03.05
조석(潮汐)  (0) 2018.02.08
[장정일 칼럼] 꽃뱀에게 넘어갔다는 남자들  (0) 2018.02.08
리라 (lira)  (0) 201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