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발자국
안도현
시골 서점 책꽂이에 아주 오랜 시간 꽃혀 있는 시집이 있다
출간한 지 몇해째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시집이다
시인이 죽은 뒤에도 꼿꼿이 그 자리에 꽂혀 살아 있다
나는 그 시인의 고독한 애독자를 안다
본문은 펼쳐 읽지 못하고 제목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날마다 시집 귀퉁이만 밟아보다가 돌아서던 그를 안다
햇볕의 발자국을 가진 사람을 안다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나의 블로그에는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거의 없다.
공개설정은 되어 있지만 내 가까운 주위나 지인들에게 내 블로그를 소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한산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하루 대략 사 오십여명의 사람들이 다녀간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난 그분들을 햇볕의 발자국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하루의 단 한 두시간의 햇살에 자신을 키워가듯이,
내 블로그에도 얼마 되지 않는 햇볕의 발자국들이 온기가 되어준다.
덕분에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난 따스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지금 흐르는 사티의 '짐노페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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