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스며드는 것 / 안도현

kiku929 2011. 11. 10. 08:19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유태인인 아버지는 아들과 수용소에 끌려가

수용소의 생활을 마치 재미난 놀이를 하는 것처럼 아들과 지낸다.

덕분에 아들은 그곳의 생활이 그렇게 참혹하고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천진난만하게

지낼 수 있게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가슴 뭉클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그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마 그 아버지였으면 이럴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니까.

 

'아들아, 저녁이야. 우리 불끄고 잘 시간이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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