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유태인인 아버지는 아들과 수용소에 끌려가
수용소의 생활을 마치 재미난 놀이를 하는 것처럼 아들과 지낸다.
덕분에 아들은 그곳의 생활이 그렇게 참혹하고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천진난만하게
지낼 수 있게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가슴 뭉클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그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마 그 아버지였으면 이럴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니까.
'아들아, 저녁이야. 우리 불끄고 잘 시간이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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