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난에 대한 설문조사 동영상이 인터넷에 떴다.
영상을 보고 있자니 울컥한다.
이제 가난은 돈이 없는 것도 불편한 것도 아니다.
자기를 하나씩 잃어가는 일이다.
꿈을 잃고, 신조를 잃고, 맹세를 잃고, 그리고 소박한 행복을 잃어간다.
그래서 가난은 슬픈 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가난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자본사회는 대부분이 가난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풍요와 상관없이 개개인은 돈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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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끝날 무렵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 라는 설문에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집에 아픈 사람이 생겨서 - 6.5%
돈 벌 사람이 없어서 -7.8%
잘 배우지 못해서- 17.7%
직장을 잃어버려서 -27.6%
돈을 벌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서- 31.5%
그리고 이어 다음의 자막이 올라온다.
"가난이 태어날 때부터
인생을 거의 규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의로운가
'개인의 게으름 탓'이라고
가난한 이들을
자책하게 가르치는 것은 교육적인가"
-박경현, 한국교육복지연구소 소장
우리는 가난은 순전히 개인의 무능력, 게으름 탓이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러면서 가난한 환경이었지만 부지런히 일해서 성공한 사람,
공부를 열심히 해서 판검사나 의사가 된 사람들을 제시하며
이 사회는 그런 기회를 누구에게나 주고 있는데도 그렇지 못한 것은
모두 자신의 문제라는 인식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가난은 무능력과 게으름의 다른 말이 되었다.
물론 성공한 사람은 분명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능력과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몇몇을 앞에 두고 그처럼 되지 못한 자신을 탓하라는 식은 얼마나 비겁한 것인가.
모든 것은 순환의 힘을 갖고 있어서 가난은 가난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부자는 부자의 순환을 갖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위험이 높은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고 건강을 잃을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며
병원비를 내느라 더 많이 가난해지기 쉽다.
자식을 가르치는 일도 버겁고 부모의 생계도 책임져야 한다.
처음부터 그러한 환경을 갖고 태어나기도 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은 얼마든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던 사람은 노력없이도 부자로 시작하게 되는 것처럼...
노력한 만큼 되는 사회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처음부터 출발점은 불평등하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어떤 사람이 고등학교를 나오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이 박사를 따는 일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뤄야 할 만큼 힘든 삶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에게만 그 책임을 돌린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적어도 가난한 이를 보는 시선은 달라져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란
약자가 그나마 손해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적어도 이 사회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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