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마음

산다는 건 정말...

kiku929 2012. 10. 26. 22:30

 

 

 

 

 

 

 

저녁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큰 딸이 문을 열기에 경비 아저씨가 올라오셨나보다 하고 현관으로 나가는데

일 층에 사는 아저씨였다.

일 층 엄마와는 친분이 있지만 남편과는 인사만 하고 지내던 사이여서 예감이 불길했다.

역시나 내 어두운 예감처럼 그 엄마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안사람이 췌장암 말기래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치료할 게 없어서 내일 퇴원해요.

하지만 안사람은 그냥 작은 종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프지도 않고 너무 멀쩡해서 나도 믿을 수가 없어요.

당분간은 모르게 하다가 나중에 통증이 심해지면 그때 말하려고 하는데 혹시라도 물어보거든

희망적으로 말해주셨으면 해서요."

이미 간까지 전이된 상태라 의사도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항암치료나 받으면서 집에서 지내는 것이

좋을 거라 말했다고 한다.

 

일층엄마는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내가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던 해에 함께 이사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엄마이다.

만날 때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가끔씩 얼굴보면서도 서로 속에 있는 말 전부를 털어놓을 수 있어 언니처럼 좋았다.

그런데 그 아줌마가 췌장암 말기라고 한다.

정말 사는 일이 별 거 아니라는 생각에 힘이 빠지는 것만 같다.

평생 자기가 머물고 있는 그 몇평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니... 그런데도 거기에 비해 너무 많은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삶.

 

한 사람의 생이 어두워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아야 한다는 일이 두렵다.

삶의 허무를 인정하게 된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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