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감동적인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최대한 감독의 감성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어쩌면 무미건조할 만큼의 화면과 대사만이 있을 뿐이었다.
주인공을 엿보는 한 요원, 그리고 카메라는 그 요원을 제 삼의 눈처럼 엿보고 있다.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그 역시 또다른 타인의 삶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영화는 그 기조를 유지하며 막을 내리고
관객은 감동을 느낀다.
그 감동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의 자연스러운 울림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 직전의 동독이다.
언론과 예술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는 상황에서
드라이만이란 작가에게 혐의를 두고 도청을 하며 감시를 하게 된다.
그 책임자는 비밀요원 비즐러 (HGWXX/7).
드라이만은 절친한 사이였던 연출가의 자살을 계기로 자유를 향한 몸짓을
하게 된다, 동독의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를 신문에 기고하면서
정부로부터 표적이 되지만 끝내 정부는 그 증거를 찾지 못하고 드라이만은 무사하게 된다.
그건 비즐러 때문...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크리스타의 삶을 도청하면서
스스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삶에 동조하게 되고
차갑기만 했던 그의 가슴에 따스한 인간애가 싹텄던 것.
크리스타가 잡히어 결정적인 증거물인 타자기의 위치를 알려주지만
비즐러는 한발자욱 먼저 드라이만의 아파트에 와서 타자기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거짓말로 몰린 크리스타는 그 현장에서 뛰쳐나가 차사로고 즉사 하게 되고
결국 아무 증거를 찾지못한 정부는 감시체제를 해제하게 된다.
이일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비즐러는 우편배달부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그후 4년이 흘러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게 된다.
드라이만은 연극공연에서 우연히 옛 동독의 장관을 만나게 되고 왜 자기를 감시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그러자 장관은 모든 것, 안방의 침실까지 도청했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드라이만은 자신을 감시하며 보고되었던 서류들을 읽게 되고
비즐러 즉 HGWXX/7이라는 요원이 자기를 보살펴주었다는 걸 알게 된다.
드라이만은 비즐러를 찾아가 먼 곳에서 바라보다가 돌아온다.
비즐러는 어느날 편지배달을 하면서 우연히 서점앞을 지나다가
드라이만의 "선한 이들의 소나타"라는 신간 포스터를 보게 된다.
그는 서점에 들어가서 그 책을 집어들고 앞 표지를 넘긴다
거기에는 "HGWXX/7에게 헌정함"이라고 씌어있었다
비즐러는 그 책을 점원에게 내민다.
"선물하실 거예요?"
"아뇨 제가 볼 겁니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타인의 삶은 결코 타인의 삶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타인의 삶속에 한발이라도 들여놓게 된다면...
2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