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수
김상혁
새를 연구하는 교수는 새를 사랑하는 학생과 새를 사랑하지 않는 학생으로 우리를 구분한다.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다.
어제 그 교수가 강의 도중 조류관찰용 녹음기를 틀었다.
거기서 문득 흘러나온 새 교수의 흐느낌으로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철새 도래지 해질녘의 눈물 나게 아름다운 장관을 묘사해보지만……한번 터진 우리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그날 새 교수는 모래 목욕하는 새를 보여주었다.
땅 위에 작은 둥지를 보여주었다. 가장자리 효과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하지만 도마뱀이 물로 세수를 하든 코끼리가 진흙으로 도포를 하든 그런 것에 누가 관심이나 있단 말인가?
다 큰 어른이 새 떼를 관찰하다 질질 짜는 소리만큼 우리 흥미를 끌만한 것은 그 수업에 없었으므로, 새 교수, '사람은…… 새를 본받아야 합니다!' 같은 말을 진지하게 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냔 말이지.
새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교수의 강의는 새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아무 것도 가르치지 못했다.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었지만 아무도 새 교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현대시』(2017년 11월호) 중에서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은 탄생하라 / 이원 (0) | 2017.11.13 |
---|---|
등이 되는 밤 / 김경후 (0) | 2017.11.12 |
오브제 / 신동혁 (0) | 2017.11.09 |
사과와 함께 / 배영옥 (0) | 2017.11.08 |
y이거나 Y / 유지소 (0) | 2017.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