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새 교수 / 김상혁

kiku929 2017. 11. 11. 22:59



새 교수



김상혁



 새를 연구하는 교수는 새를 사랑하는 학생과 새를 사랑하지 않는 학생으로 우리를 구분한다.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다.


 어제 그 교수가 강의 도중 조류관찰용 녹음기를 틀었다.

 거기서 문득 흘러나온 새 교수의 흐느낌으로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철새 도래지 해질녘의 눈물 나게 아름다운 장관을 묘사해보지만……한번 터진 우리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그날 새 교수는 모래 목욕하는 새를 보여주었다.

 땅 위에 작은 둥지를 보여주었다. 가장자리 효과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하지만 도마뱀이 물로 세수를 하든 코끼리가 진흙으로 도포를 하든 그런 것에 누가 관심이나 있단 말인가?


 다 큰 어른이 새 떼를 관찰하다 질질 짜는 소리만큼 우리 흥미를 끌만한 것은 그 수업에 없었으므로, 새 교수, '사람은…… 새를 본받아야 합니다!' 같은 말을 진지하게 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냔 말이지.


 새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교수의 강의는 새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아무 것도 가르치지 못했다.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었지만 아무도 새 교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현대시』(2017년 11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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