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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마음에 대하여 / 이영광 시인의 '강의실에서의 단상'중에서

kiku929 2018. 6. 17. 03:03



말을 아끼라고 하면 어떤 학생들은 말을 아까워한다. 아끼는 건 아까워하는 것과 다르다.

아까워서 안 버리면 문면이 어설픈 말들로 덮인다. 머릿속에서는 아주 아주 아까워하고, 입이나 손에는 소량의 말만 묻혀야 할 것 같다.


사는 것도 그럴 것이다. 다들 저 알아주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인데, 자기 안 알아준다고 참지 못하고 말이 아까워서 떠들고 다니면

싸구려가 된다. 누구나 서로를 '어느 정도'는 알아준다. 하지만 '어느 정도'마음 가지고 쉽사리 '알아주는'것도 실례다. 아껴야 하는 것이다.


인정 욕망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만, 어떤 순간 어떤 지점에서는 그 마음도 지워지는 것 같다. 자기 글쓰기의 절정에서 누가 그런 걸 신경 쓰겠는가,보석의 시장가격을 모르고 처음 보는 외지인에게 그걸 태연히 내놓는, 천진한 원주민 같은 사람이 되는 순간이 글쓰기엔 있다.


가장 귀중한 걸 아까워할 줄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선사하는 마음, 그런 귀한 순간, 이걸,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꿈에 떡 얻어먹기보다 더 드물게 찾아오는, 이 순간보다 더 큰 '알아줌'은 없다.



- 《월간시와표현》(2018년 3월호)에 수록된 이영광 시인의 '강의실에서의 단상' 중에서





*

잠을 자는데 결국 실패하고 거실로 나왔다. 잠이 쏟아질 것처럼 해도 막상 누우면 잠드는 것이 너무 어렵다. 잠을 푹 자고 싶다..


펴놓기만 하고 읽지는 않았던 책을 대충 넘기다가 눈에 들어온 글이다. 이영광 시인의 단상들이 적혀 있다.

시인들의 시에 관한 글을 읽을 때면 어떤 염결성 같은 것을 느낀다. 시는 모두 다르게 나오지만 시에 관한 마음만은 순정하다.

아마도 시는 욕심을 낸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시가 나왔다고 해도 시에 뭘 바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안목과 자신이 쓴 시가 일치하지 않기에 시에는 그 간극만큼의 결핍이 있다.

또 그 결핍이 뭔지를 안다는 것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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