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춤을 감상할 때 그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한정된 우리의 육체로 구현되는 움직임을 통해 어떤
폭넓은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끝없던 고민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류검술의 연무(演武)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런 움직임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의 생존에 대한 고찰이 거기 녹아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추억이며
경험이고 사선의 기억이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그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단서는 시적인 대상에 대한 정서의 의탁이 아니라 지각이나 사유에 대한 어떤
치열함의 부분인 것과 같다.
칼 / 류성훈 <<월간 시인동네 2018년 6월호>>중에서,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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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극과 통한다. 극은 치열함이 없이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
그래서 예술은 극의 끝에서 피어나는 꽃과도 같다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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