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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이라는 부사어는 화장 같은 말이다

kiku929 2018. 6. 17. 03:15




화장 얼굴은 좋아 보이기도 하고 싫어 보이기도 한다. 화장은 개선이기도 하고 과장이기도 하고 왜곡이기도 하다. 이 셋의 오묘한 버무림 같기도 하고. 여성지 모델들의 화장 얼굴에 넋을 잃을 때도 싫증 날 때도 있고, 십대들의 서투른 얼굴 화장이 우스울 때도 풋풋할 때도 있고, 자고 일어난 옆 사람의 조금 커진 얼굴이 낯설 때도 반가울 때도 있다. 화장'빨'에는 효과도 역효과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제 얼굴에 맞는 화장술일 텐데, 그런 게 과연 있을까 싶다. 자연계에서는 수컷들의 외양이 더 화려하고 옛날의 남성 권력자는 온갖 장신구로 몸치장을 했다지만, 요즘 남성들은 치장과는 거리가 있고, 나 같은 사람은 집에 로션도 없다.


'잘'이라는 부사어는 화장 같은 말이다. 잘 살자, 잘 놀자, 잘 쓰자…. '잘'은 꾸미는 말이다. 삷과 놀이와 글의 속성과 양상을 화장하는 말인데 이 말 자체에는 어떤 강박이 들어 있는 듯하다. '잘'속에는 어딘가 결여를 띤 온갖 꾸밈말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냥 살고 놀고 쓰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출발만이 아니라 시종 그래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화장은 그저 치장이 아니라 얼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갸륵한 기술일 테니까. 잘 살고 잘 놀고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 눌리면, 살지도 놀지도 쓰지도 못할 때가 많다.'잘'만 남는 것이다. 삶과 놀이와 글 쓰기는 그것들에 대한 어떤 수식어보다 더 크다.


글쓰기에 한해서라면, 화장술이 위장술이나 가장술假裝術이 돼도 좋을 듯하다.그것이 마음의 발견과 발명을 돕는다는 점에서만 그렇다. 그런데 화장을 믿고 얼굴을 소홀히 하면 오히려 마음의 진실이 죽게 된다. 지나친 꾸밈은 어떤 종류의 매장술埋裝術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월간 시와표현》(2018년 3월호)중에서 수록된 이영광 시인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