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는 세상이 잠시 정지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패스워드다.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그건 다름을 긍정하는 것이다.
*비는 감상적이고, 열정적이고, 소심하고, 발랄하다.
비는 오랜 내적 숙고 끝에 구름을 떠나 우리를 적시기로 결정했다.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개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비는 내 감정들을 확인시켜준다. 몇몇 사랑은 비를 견뎌내지 못했다.
굳게 착색되지 못한 그 색깔들이 빗물에 씻겨 바래버렸다.
비는 붉은빛을 받아 삶에 이미지를 가져다주는 사진 현상액처럼 작용한다.
그것은 감정의 결정結晶 작용을 완성한다.
*문득 행선지에 관한 새로운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본다.
삶의 리듬이 깨진다. 균열이라 말할 수조차 없지만, 갑자기 우리는
시적 무정부상태가 도래하는 것을 보며 기쁨을 나눈다.
*비는 물질들의 혼합과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화학적, 생물학적 작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촉매제이자 윤할제이다.
*비는 어린 시절의 유전자들을 품고 있다.
어린 시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우리는 남몰래 지저분한 개구쟁이로 되돌아가는 것을 자신에게 허락한다.
*비를 내리게 하려면 좋은 구두가 필요하다.
질 좋은 신발을 만들어내는 나라, 영국에 유독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사랑은 드물어진다.
아무도 착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비사 섬으로 가는 건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을 자기 위해서다.
*구름은 가면들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열 배로 증폭시킨다.
모든 신비는 도달할 수 없는 그 높이에 있다.
빗방울들은 그 신비의 흔적을 품고 있고, 하늘 놓이 떠다니는 그 비밀스런 방의
내용물에 대해 우리에게 정보를 준다.
*구름의 자궁이 수축된다. 하늘의 배가 살짝 열린다.
거기서 양수가 흘러나와 우리를 덮친다.
* 오로지 화가들만이 태양 아래서도 살아남는다.
그들은 물감의 꽃 색소와 붓의 동물 털을 이용해 태양을 생포한다.
화가는 빛과 땅의 존재이고, 작가는 대양의 피조물이다.
우리의 잉크는 심해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오징어로부터 온 것이다.
*빗방울은 정자와 똑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추락 속에 잉태가 있으니까.
*우리 조상들은 비의 사용법을 찾아냈다.
코아계곡과 쇼베 동굴의 벽화에 의해 증명된 비의 주요 용법은 같은 동굴이나 야영지에서
생활하는 부부들로 하여금 남의 귀를 의식하지 않고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데
있었다. 비는 그 리드미컬한 소리를 통해 애무와 성관계를 부추긴다.
*음악은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 발명되었다.
* 비와 음악은 같은 기능을 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듣지 않을 자유와
들리지 않을 자유를 준다.
<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중에서 / 마르탱 파주 지음, 이상해 옮김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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