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저녁 공원을 걸으면 풀벌레 소리가 나즈막히 들린다.
그 속에서 귀뚜라미도 울고 있었을 텐데 나는 듣지를 못했구나.
하지만 이제
매미떼도 사라지고,
세상이 우물처럼 고요해지면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빈 공간을 채우게 되겠지.
그럼 또 가을이야, 하고 한층 높아진 밤 하늘을 올려보게 될 것이다.
가을의 향내가 느껴진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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