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계절
김은자
여름이 채 떠나기도 전
귀뚜라미 한 마리 싱크대 밑으로
스며들어 밤마다 운다 여름내
더운 국수를 끓여내던 부엌에는
귀뚜라미 울음이 앞치마처럼 걸려있고
가장 어두운 곳에 뿌려진 울음 하나
나는 가을 옷을 입고
낙엽 밟는 소리로 밥을 짓는다
사르륵 사르륵 밥 짓는 연기에
마로니에 잎이 흔들릴 때마다
흔들린 것들은 울음을 가지고 있다고
이름 지어주면서, 깊어진 것들은
흔들린 사유라고 기록하면서 후욱-
저녁을 끈다
내 안이 환해진다 어둠 속에서
울음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울음은 들꽃을 닮았다
울음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나는 꺾지 않으리라
꽃잎의 수를 세던지 꽃잎
남아있는 사연을 바람에 따라 적으며
울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리라
여름의 귀퉁이를 갉아 먹는 벌레
소리에 맑은 저녁상을 차리는 밤
나는 아무도 없는 계절에
살고 있었다
요즘 난 혼자서 '안녕'이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안녕이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에서 별이 떨어진다.
아프다...
그래도 나즈막히 안녕이라고 말한다.
초록에게도 들꽃에게도 풀벌레에게도...
이제부터 나는 안녕!이라고 스스로 말해야 할 때가 많아질 것이므로.
추석, 가족과 시골에서 지낼 때 지루한 표정으로
나에게 무얼할거냐고, 빨리 올라가자고 재촉하던 아이들은
올라오자마자 다음날부터 남자친구를 만난다고 바쁘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공원이라도 가고 싶었던 나의 생각은
해프닝처럼 멋쩍기만 하다.
오늘은 재봉틀로 교자상 싸개를 만들었다.
시를 한 두편 읽어보고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하얗게 나온 머리에 염색을 했다.
담담하게 안녕!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난 나의 계절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게 될 것이다.
이제 가을,
계절은 점점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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