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늘
강미정
꽃이 지고 있는 나무 그늘에서
아이는 내 무릎을 베고 잠들었다
왁자하게 술렁이던 꽃나무는
적막이 한 그루다,
천천히 한 장을 내려놓고 두 장을 내려놓다가
후루루, 빠르게 다 내려놓는다
네가 내 몸으로 와서
몸 가득 초록으로 살 때까지
네가 내 몸으로 와서
몸 가득 아픔으로 살 때까지
네가 내 몸으로 와서
몸 가득 사랑으로 살 때까지
죽도록 죽도록 살 때까지 살 때까지,
정처는 고요하게 푸르기만 하고
정처는 수런거리는 길 안에만 있고
정처는 너무 오래도록 한 곳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
한 잎의 적막이 내려앉은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꽃 그늘의 수런거림이 고요하고 푸르다
*부산일보 /시가 있는 주말
*
꽃이 지고 있는 그늘 아래에
잠시의 흔들림, 잠시의 고요, 잠시의 거처, 잠시의 눈맞춤이 왔다가 사라진다.
꽃이 지고 있는 그 사이,
그 그늘속에 빌려 살던 너와 나의 시절도
그렇게 흐르고 흐르고 흘러가니...
**
날이 많이 차가워졌다.
이제 초록의 생기도 사라지고 마지막까지 꽃을 피우던 꽃들도 서서이 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초록과 꽃이 드리우던 그 그늘은 여전히 고요하고 푸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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