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2008)

kiku929 2010. 9. 26. 17:22

 

 


 

 

꼭 보고 싶었던 영화,

이 영화를 봐야지 하고 생각한 후로 거의 일년이 지나 오늘에야 보게 되었다.

한가로이 홀로 있는 휴일, 이런 날 이 영화를 보기에는 안성맞춤이었으니까.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어느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마이클은 몸이 많이 아파 길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

지나가는 한 여자의 도움으로 집까지 무사히 가게 된다.

성홍열에 걸린 마이클은 3주가 지나서야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러 가게 되고

전철표 검사원이던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한나...

그후 마이클이 다시 그녀의 집 주위를 서성이고 있을 때 퇴근하던 그녀는 그에게 양동이에 석탄을

들고 오도록 한다. 그리고 목욕을 하게 하고 그녀 역시 옷을 벗고 그와 관계를 갖는다.

이제 마이클은 학교가 끝나면 그녀에게 달려가고 그녀는 그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읽어달라고 한다.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계속되면서 어느날 그녀는 그에게 책을 읽어주고나면 함께 자기로 약속을 정한다.

마이클은 그녀에게 읽어줄 책들을 골라 매일같이 읽어주고 그녀는 그가 읽어주는 것을 들으며 울기도,

웃기도 한다. 그리고 둘은 잠을 잔다.

 

어느날 한나는 직장에서 근무 태도가 훌륭하다며 사무직으로 옮길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한나는 망설인다.

왜냐하면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들키고 싶지 않은 숨겨진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글을 읽을 줄 몰랐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그 다음날 집을 떠난다.

마이클은 어느날 갑자기 그녀와 헤어지게 되고 그때부터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게 된 마이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경비일을 맡으며

유태인의 학살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기소가 된 재판장에 참관수업을 받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다.

사무직을 피해 그 마을을 떠난 그녀는 단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취직을 하게 된 것이고 그 일은 유태인의 여자들을

선별적으로 골라내어 죽음의 행렬에 가담시키는 일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해 폐쇄적으로 살아온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일 뿐,

솔직하고 순진하기조차 한 그녀는 그중 책임자로 몰려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녀가 직접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증언에 필체를 확인해야 한다며 재판장에서 그녀에게 글을 써볼 것을 요구하자

그녀는 망설이다가 확인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이 쓴 것이라고 증언하게 된다.

그 과정을 보며 비로소 마이클은 그녀가 문맹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마이클은 끝내 말하지 않고 그녀가 함께 기소된 다른 피고들과 달리 중형인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것을 바라본다.

그가 증언을 했다면 그녀의 형량은 훨씬 가벼워졌을 테지만 그가 지켜주고 싶었던 것은

그녀가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어했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이혼한 마이클은 딸을 데리고 고향에 들른다.

어머니는 아버지 장례식에도 오지 않던 마이클이 그제야 들른 것에 서운함을 비추자 그는 말한다.

"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라고.

그만큼 그의 삶은 그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이었던 것이다.

마이클은 지하공간에 있는 방에서 예전 자기가 그녀에게 읽어줬던 책들을 찾아 읽는다.

그리고 녹음기에 녹음하여 그녀에게 소포로 보내준다.

그녀에게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이었던 그것은 그녀에게 살아가는 희망이며 빛이었다.

그녀는 어느날 그가 녹음하여 보내준 책을 빌려 혼자서 글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처음 편지를 보낸다.

"고맙구나, 꼬마야. 이번 것은 재미있더구나." 라는.

그는 그 편지를 읽으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래도 그는 꾸준히 그녀에게 책을 읽고 녹음하여 보내준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러 그녀는 석방을 앞두게 되고 그녀를 보호하고 있던 형무소의 직원은 그에게

그녀를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는 석방되기 일주일 전 처음으로 그녀를 찾아간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그를 보자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아보지만 그는 그 손을 피한다.

감옥에서 무엇을 깨달았냐는 그의 물음에 그녀는 글을 깨우쳤다며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죽은 것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마이클에게 이제는 책을 읽어주는 일도 없겠구나, 라는 말을 하고

마이클은 직장과 살 곳을 마련하고 일 주일 후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곳을 떠난다.

그 후, 석방을 앞둔 그녀는 감옥안에서 자신의 돈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던 한 유태인 소녀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

 

마이클은 이제는 중년이 된 그 유태인 소녀에게 유언을 전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고

둘의 관계를 묻는 그녀에게 마이클은 자신이 한때 그녀와 사귄적이 있었으며

그때는 불과 15살의 어린 나이였고 여름동안의 짧은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눈물이 고이는 마이클을 보고  말한다.

"알겠어요. 당신의 인생에 그녀가 영향을 끼친 거군요."라고.

그러면서 자신은 그 돈을 받을 수 없으니 그 돈은 알아서 써달라는 말을 남긴다.

 

마이클은 딸을 데리고 한나의 무덤으로 향한다.

아버지이면서 딸에게조차 마음을 열지 못했던 마이클은 그곳에서 한나에 대해 딸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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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부,

15살짜리 소년과 36세의 여인이 육체관계를 맺게 되는 과정이 나로서는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남녀 사이만큼 세상에서 가장 불가해한 관계도 없으므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이클과 한나의 관계를 사랑이냐 아니냐는 질문으로 규정지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가 누군가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 과거의 시간은 어떻게 현재, 미래로

스며들어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는 모든 관계의 이별에는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의식을 치루게 되어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의식이 없이는 우린 영원히 진정한 이별을 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이 아팠던 건 마이클의 입장에서 그 이별의 의식은 비록 오랜 세월동안 치뤄야 했던 것이라 해도

한나의 무덤을 찾게 되면서 비로소 한나와의 시간을 상자속에 고이 포장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한나의 의별은 마이클과 재회를 통해 어쩌면 자신이 상상해온 마이클은 이제 없음을 확인하게 된 것으로

이별의 의식을 치룬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믿고 싶다.

그 둘은 서로가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세상의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게 기억되어야 한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