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과 삽
홍일표
나는 한 생애를 숟가락질로 탕진하였다
내 속의 허공을 메우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이때껏 작은 고랑 하나도 메우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여전히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왼손 오른속 다 동원해도
나는 텅텅 울리는 커다란 둑이다
채워지지 않는 슬픈 욕망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금속성의 연장은 자란다
조금씩 키가 커지고
쓰면 쓸수록 욕망의 몸집도 불어난다
기진하여 더 이상 생의 도구를 들 수 없을 때
숟가락은 슬슬 떠날 채비를 한다
작고 날렵했던 한 시절을 청산하고
평생 섬겼던 주인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한다
밥 대신 붉은 땅을 파내어 잠자리를 마련하고
주인과 더불어 고단한 생애를 마감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숟가락이
터무니없니 크고, 많이 야윈 까닭이다
*<시안> 2007, 가을호
요즘은 시를 읽는 것이 예전처럼 재미가 없다.
내 마음에 들어오는 시들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때문이다.
나는 점점 안정적이고 단순해지는데 요즘 시들은 점점 난해해지고 복잡해진다.
그래서 갈수록 요즘의 시들과 나의 감성적 취향은 거리가 멀어지나보다.
어젯밤 내린 눈을 핑계로 오늘은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오래되어서 지하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눈이 오고나면
눈에 파묻힌 차를 갖고 나가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다.)
덕분에 차분하게 앉아 최영미 시인이 쓴 에세이를 모두 읽고 지난 시들을 뒤적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시가 있어 옮겨보았다.
평생 주인을 위해 먹을 것을 날아준 숟가락,
주인의 욕망은 나이들수록 커지고 따라서 숟가락도 점점 커져
종내, 명이 다할 때는 주인을 편안하게 잠재워줄 삽이 되는 숟가락,
그리고 자신도 그 주인과 더불어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박물관 전시실의 창백한 불빛아래 아무 말없이 조용히 누워있는 숟가락들,
그들의 한 생은 참으로 고귀하고 충직하고 떳떳했구나,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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