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문태준
외떨어져 살아도 좋을 일
마루에 앉아 신록이 막 비 듣는 걸 보네
신록에 빗방울 비치네
내 눈에 녹두 같은 비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나는 오글오글 떼지어 놀다 돌아온
아이의 손톱을 깎네
모시조개가 모래를 뱉어놓은 것과 같은 손톱을 깎네
감물 들듯 번져온 것을 보아도 좋을 일
햇솜 같았던 아이가 예처럼 손이 굵어지는 동안
마치 큰 징이 한번 그러나 오래 울렸다고나 할까
내가 만질 수 없었던 것들
앞으로도 내가 만질 수 없는 것들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이 사이
이 사이를 오로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의 혀끝에서
뭉긋이 느껴지는 슬프도록 이상한 이 맛을
살구꽃이 푸른 살구 열매를 맺는 이 사이,
내가 만질 수 없고
앞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
오래도록 남는 슬프지도 않으면서 슬픈 뒷 맛
징 소리의 여운 같은 거...
어제는 봄이 오는 길목이나 되듯이 따스하기 그지 없었건만
오늘은 금방이라도 겨울이 올 것처럼 찬 바람이 불었다.
가을은 가고 아직 겨울은 오지 않은 지금,
오늘을 난 '이 사이'라고 말하고 싶구나.
'이 사이'를 건너 가면 겨울은 오고야 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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