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마음

피곤한 하루

kiku929 2011. 6. 17. 20:53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작정하고 게발 선인장, 벤자민, 아이비, 더피들을 모두 새집으로 이사를 시켜주었다.

로즈마리와 라벤더는 올 이른 봄에 분갈이를 해줬는데도 그새 뿌리가 꽉 차 있어 이번에는 좀 넉넉한 화분에 옮겨줬다.

장마가 오기전에 화초들에게 새 집을 갖게 해주고 싶어 폭풍같은 분갈이에 열중하고 있는데 핸드폰의 문자벨 소리가 울린다.

우리 큰딸이 출근하면서 아파트 단지의 어디 어디에 버려진 화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충 끝내고 그 자리로 나가보니 자그마한 옹기에 언제쯤 물을 먹은 건지 사랑초가 바싹 말라있는 채로 화단앞에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다시 집으로 들고와 옹기에는 아이비 자그마한 두 줄기를 심어놓고 사랑초는 뿌리를 캐어 다른 화분에 묻어 놓았다.

집에도 사랑초가 한가득 있었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얼마전에는 카네이션이 심겨진 화분이 버려져있는 것을 주워와 시든 것은 버리고 화분위에 마사를 올려놓고 물을 흠뻑 주었더니

지금은 생기를 되찾았다. 두세 줄기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몸이지만 그래도 살아주니 반갑다.

우리집서 제일 명당자리를 차지하고서는 나에게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줄기에 물을 퍼올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난 알 수 있다. 이처럼 소리 없는 소통이 난 참 좋다.

 

젊었을 때에도 화초를 지금처럼 많이 키우긴 했지만 엄마 돌아가시고는 아무것에도 손이 가지 않아 집에 있는 화초들을 모두 죽이고

한동안은 아무것도 키우지 않았다. 그때는 죽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매사가 귀찮아져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싶었다.

보는 것도 괴로웠으니까.

하지만 작년부터 하나 둘 키우기 시작하면서 마른 줄기에 물이 오르듯 떠나간 예전의 마음들도 서서히 다시 내게로 찾아와주었다.

지금은 화초를 보며 많은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화분 하나의 무게가 보통 2,3키로정도 되니 하루에 몇번씩 자리를 옮기며 햇살과 바람을 맞게 하기 위해

화분을 들고 놓는 일이 조금은 힘에 부친다.

그러잖아도 손가락관절이 안좋은데 지금은 팔꿈치 어깨까지 아프니...그래도 좋은 걸 어떡하랴.

 

화초를 키우면서 엄마를 많이 생각한다.

엄마의 나이에 점점 가까와질수록 난 엄마의 편에서 더욱 이해하게 되고 그럴수록 한편에서는 후회도 함께 커진다.

하지만 그 후회는 예전처럼 괴로움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담담하게 다 그런거라고, 다시 그때가 돌아와도

딸인 나는 엄마에게 똑같을 거라고, 그렇게 나를 다독이게 된다.

그것은 나 또한 아이를 키우고 있고 아이들 역시 나를 서운케 할 때도 많이 있지만 부모와 자식은

평등한 관계가 될 수 없기에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이들에세 서운한 일이 있어도 결국에는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니까...

그러면서 내가 부모에게 후회되는 일들에 대해서도 그때 엄마도 지금 나처럼 날 이해해줬을 거라고 위로를 받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앞에서는 이처럼 언제나 이기적인가보다.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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