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서랍

하늘은 높고 구름은 고요하구나

kiku929 2010. 1. 9. 22:23

 

 

 

 

 

"천고운정 天高雲靜"

 

엄마가 결혼하고 처음 친정을 찾았을 때 우리 외할아버지는 말씀도 못하실만큼 병이 깊어

병석에 누워계셨다고 한다.

엄마의 친정은 먼 바다를 건너야만 갈 수 있던 곳이라 마음먹는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엄마가 다시 시댁으로 와야하는 날 할아버지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고하자 할아버지께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짓으로 창문을 열어달라 하셨단다.

엄마가 창문을 열어드리자 할아버지는 밖을 바라보더니

화선지에 '天高雲靜'이라고 쓰시고선 그  네 글자를 엄마에게 건네셨다고 한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고요하니

너를 태운 배는 네가 가는 곳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겠구나....

 

내가 자라고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친정집 안방에는 그 네글자가 언제나 벽에 걸려있었다.

엄마에겐 주문같은 글이지 않았을까 싶다.

할아버지의 그 염원으로 엄마의 인생또한 무사히 흘러가게 될 거라는.

 

오늘은 우리 둘째딸이 워싱턴에 있는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교환학생으로 출국한 날이다.

지금쯤 아마 태평양 상공에 있을까?

아침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난 나도모르게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고운정이란 네 글자를 떠올렸다.

날씨는 춥지만 하늘은 높고 구름은 고요한 날...

어쩐지 내게도 주문처럼 그 글자를 떠올리니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잘 데려다 줄거야...'

 

사람의 마음은 어쩌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떠돌다가

연을 따라 마음으로 흘러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라고 세익스피어는 말했지만 이제 난 그 흰빛이 어디로 가는지

알 것도 같다.

우주에서 별들의 질량을 계산하면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90%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세계라고...

아마도 마음이라든가, 진실이라든가, 시간이라든가, 떠난 사람이라든가

이러한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들이 난 우주의 90%안에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눈의 그 흰빛이나 꽃들의 사라진 색깔또한...

그런 진정한 아름다움이, 간절한 바람이 어떻게 소멸한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사랑하는 딸,

잘 가고 있는 거지?

지금 네가 있는 그 하늘도 분명 맑고 화창할 거야.

힘들 때마다 주문처럼 외워보렴.

그럼 어떤 어려운 시간도 잘 흘러가게 될 거야.

더이상 무섭다고 울지말고 아프지 말고 씩씩하게 잘 지내다 오렴,

훌쩍 자라서....

 

 

 

   우느라 눈이 부었다. ㅜㅜ

 

 

2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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