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당신의 내부를 찾아가는 길뿐' -릴케
난 걷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걷기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음미하기 위한 걷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야트막한 산등선이나 오솔길, 논두렁길, 보리밭 사잇길, 시골길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공원을 자주 걷는다.
최대한 느리게,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다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쪼그리고 앉아서 찬찬히 보기도 하고,
바람이라도 좋으면 보온병에 준비해간 커피 한잔 마셔가며 쉬엄쉬엄 가는 여정을 좋아한다.
걷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내가 고민하던 것들이 문득 가벼운 일처럼 느껴진다.
발 하나에 의지해 나의 몸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그 단순 반복되는 행위가 주는 자유로움이란..
발에서 느껴지는 땅의 감촉을 고스란히 몸 속으로 전하다보면 땅 위의 사연들이 가슴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느낀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은 너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니까...
저마다 다른 풀잎과 빛깔들, 풀잎에 조롱조롱 맺힌 이슬방울,
코를 바짝 들이대고 찾아야만 보이는 쬐그마한 들꽃과 그 꽃의 향내, 구름, 산...
그리고 먼데서부터 바다내음, 숲내음을 연신 실어나르는 바람결을 느끼며 발을 옮기다 보면
나도 어느새 그들과 일체가 된다.
나 자신 자연의 일부가 됨으로 해서 나와 자연은 일대일의 대등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런 관계는 어느쪽도 부담을 주지 않으므로 편안하다.
걷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건 속도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내가 멈추고 싶은 곳 어디서든
마음대로 지체할 수 있다는 거...
그런 한가로움은 오로지 걷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걷는 것은 자연을 향하는, 자연의 품으로 안기기 위한 걸음마인지도 모른다.
언제라도 날 받아주는,
날 거부하지 않는,
무. 조. 건.
혹시나 알까,
비밀은 뭔가 통할 것 같은 낯선 사람에게나 털어놓을 수 있는 거라는데
운이 좋으면 정말 마음이 통하는 길동무를 우연찮게 만나 길이 허락하는 만큼의 시간동안
이물없는 정담을 나누게 될 런지도...
다시는 볼 것 같지 않은 그런 좋은 사람... ^^
미래와 과거 사이에 가로놓인, 끝없이 펼쳐진 초원.
부디 이 초원에 나 있는 희미한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 보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켜켜로 흐드러진 풀들을 밟으면서....
'대체 무슨 까닭이지요?'
'그것은 진정한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
'대체 어디로 향하는 건가요?'
'그대의 생각이 닿는 곳으로.'
<얀 이야기 1-얀과 카와카스마>중에서 /마치다 준, 동문선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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