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占(점) 치는 노인과 便桶(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문학과지성사
갈수록 함께 고통을 나누는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
예전엔 끼니가 되어도 이웃집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면 쌀이 떨어진 걸 알고 밥이라도 가져다 줄 줄 알았다.
어느날 갑자기 사고가 나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다 해도 큰 아버지 작은아버지네 집에서 당연히 조카들을 거둘 줄 알았다.
대가족 식구에서 사람 하나 거두는 일은 그리 큰 일이 아니었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풀들이 자연속에 거저 자라듯 그렇게 자라났다.
하지만 이젠 한 가정의 불행은 그 가정의 고통으로, 가정 안에서도 개개인의 고통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스스로 져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모두가 자기 문을 꼭 닫고 아무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안에서 또 밖에서 단단한 문을 걸어잠군 채 살아간다.
갈수록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었다면, 함께 고통을 공감해줄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은 살아야 할 희망을 찾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병은 그렇게 외로움 속에 나날이 깊어가건만 아무도 알아차리지를 못한다.
아무도 아프지 않는, 그러나 병든 사회가 된 것이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이 플라워 / 문인수 (0) | 2012.07.10 |
---|---|
유방 / 문정희 (0) | 2012.07.10 |
아직 / 김선우 (0) | 2012.06.20 |
'여'에게 / 김선우 (0) | 2012.06.14 |
풀잎 / 박성룡 (0) | 2012.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