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플라워
문인수
마음 옮긴 애인은 빛깔만 남는다.
말린 장미. 안개꽃 한 바구니가 전화기 옆에
놓여 있다. 오래.
기별 없다. 너는 이제 내게 젖지 않아서
손 뻗어 건드리면 바스러지는 허물, 먼지 같은 시간들.
가고 없는 향기가 자욱하게 눈앞을 가릴 때
찔린다. 이 뾰족한 가시는
딱딱하게 굳은 독한 상처이거나 먼 길 소실점.
그 끝이어서 문득, 문득 찔린다.
이것이 너 떠난 발자국 소리이다.
우리집 거실 한 켠에는 올 봄 큰 딸이 선물한 후리지아 한 다발과
베란다에서 피었던 떡갈잎수국 한 송이가 바짝 마른 채 걸려 있다.
마를대로 마른 꽃을 손으로 쓰다듬으면 바스락 소리가 난다.
향기도 빛깔도 사라진, 오로지 마른 몸으로만 내는 저 소리,
지나간 추억은 모두 저토록 아슬히 부서지는 소리를 낸다.
그래서 그 소리는 언제나 아프다.
그럼에도 나는 버리지를 못하고 오래도록 벽에 걸어두고서 이따금 바라보기도 하고 만져도 본다.
꽃 핀 시절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기에 그나마 이대로도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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