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빵집 우미당
심재휘
나는 왜 어느덧 파리바케트의 푸른 문을 열고 있는가. 봄날의 유리문이여 그러면 언제나 삐이걱 하며 대
답하는 슬픈 이름이여. 도넛 위에 쏟아지는 초콜렛 시럽처럼 막 익은 달콤한 저녁이 내 얼굴에 온통 묻어
도 나는 이제 더 이상 달지가 않구나.
그러니까 그 옛날 강릉 우미당을 나와 곧장 파리바케트로 걸어왔던 것은 아닌데, 젊어질 수도 없고 늙을
수도 없는 나이 마흔 살, 단팥빵을 고르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이제는 그 빵집 우미당,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아침의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은 이미 이별한 것. 오늘이 나에게 파리바케트 푸른 문울 열어 보이네. 바케트를
고르는 손이 바케트네. 그러면 식탁에서는 오직 마른 바케트, 하지만 씹을수록 입에 고이는, 그래도 씹다
보면 봄날 저녁 속의 언뜻 언뜻 서러움 같은, 그 빵집 우미당, 누구에게나 불에 덴 자국 같은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들,
내가 살지 않는 저 먼 사막의 모래에 이미 묻혀버린,
하지만 언제든 바람불면
선명한 칼라로 내 가슴에 사뭇 맺혀오는 것들...
파리바게트의 문을 열 때,
혹은 바게트의 빵을 씹을 때
한줄기 바람처럼 가슴을 지나가는 우미당의 풍경은 내게도 있다.
아픔도 없는 불에 데인 자국이 일순 욱씬거려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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