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도종환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있다 장롱이 그렇듯이
오래 묵은 습관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 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 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 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
아내가 내 몸의 여닫이 문을
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보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 사람도 무생물이 되나보다.
가구처럼 바라보고
가구처럼 있어도 없는 존재들,
사람은 누구나 존재로서 존재하고 싶은데...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빵집 / 이면우 (0) | 2012.11.21 |
---|---|
화분 / 이병률 (0) | 2012.10.09 |
폰 三昧境 / 임보 (0) | 2012.08.30 |
민지의 꽃 / 정희성 (0) | 2012.08.22 |
드라이 플라워 / 문인수 (0) | 2012.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