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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 이병률

kiku929 2012. 10. 9. 00:57

 

 

 

화분


이병률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천지사방 마음 날리느라

봄날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 문학동네.2005.

 

 

 

 

 

작가와 문학사이](18)이병률-버티고 버티다 쓰는 ‘슬픔의 시’

입력: 2007년 05월 18일 15:42:34
모든 감정의 끝에는 슬픔이 있다. 기쁨·증오·분노·사랑이 그 극단에 이르면 인간은 결국 슬퍼진다. 이것은 소설가 은희경의 말이다(‘비밀과 거짓말’). 빼어난 시가 노래하는 것들이 그 ‘극단에서의 슬픔’이다. 한 순간의 달뜬 감정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다. 그냥 좀 내버려 두었다가, 그것이 슬픔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내 마음의 세입자나 되는 듯 적요해질 때, 그때 쓰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어려운 일은 시를 쓰는 일이 아니라 시를 쓰지 않고 버티는 일이다. 1967년에 태어나 1995년에 시인이 된 이병률은 버티고 버텨서 슬픔이 눈물처럼 투명해질 때 겨우 쓴다. 애이불상이라 했다. 도대체 슬프지 않은 시가 없으나 그 어느 슬픔도 비천하지가 않다.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화분’에서)

첫 번째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에서 골랐다. 가장 아름다운 시라서가 아니라 가장 그다운 시여서다. ‘화분’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라는 구절을 얻었으니 그것만으로 이미 넉넉하지만,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라는 구절이 있어 또 한번 철렁한다. 그의 아름다운 시들은 대개 작별을 노래한다.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별(離別)이 아니라 스스로 힘껏 갈라서는 작별(作別)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애인이여/ 너를 만날 약속을 인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 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가벼히’)고 노래한 미당(未堂)의 달관과는 다르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그토록 지극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일에 그토록 엄결(嚴潔)하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작별을 노래하게도 되는 것이다.

“이 계절 몇 사람이 온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한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에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당신이라는 제국’에서)

두 번째 시집 ‘바람의 사생활’에서 골랐다. 가일층 처연한 작별의 노래다. 지금도 어디선가 사람들은 작별하고 있겠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찌르기도 하였겠다. 당신이 나를 잊어가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무덤을 차릴 일도, 천막을 걷어치울 일도, 피가 말라 생을 접을 일도 아니다. 시인은 자꾸 그럴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마치 그 일들을 이미 다 겪어낸 이의 말처럼 들린다. 그럴 일이 아닌 줄 알지만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듯 그렇게 봄날은 가고 ‘당신이라는 제국’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속수무책이다. 실로 주술적이라고 해야 할 이 시의 매력은 아무리 되풀이 읽어도 탕진되지 않는다. 그의 두 번째 시집에는 이런 절창들이 수두룩하다. 그는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들을 지극히 개성적인 언술로 노래한다. 이것이 이병률 시의 힘이다.

그는 여행에 들린 사람이기도 하다. 십여 년의 여행 기록을 모아 산문집 ‘끌림’을 펴내기도 했다. 로망을 팔아먹는 흔해빠진 여행 산문집이 아니다. 그 책은 오히려 범속한 나날들을 지극하게 감당한 사람에게만 홀연히 떠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의 시들도 결국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상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에 충분히 지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홀연히 떠나면 그것은 그저 무책임일 뿐이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이러구러 봄날이 다 가는 동안 우리는 끝내 이 서울을 떠나지 못했구나. 님은 삐쳐 있고 꽃들은 진다.

〈신형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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