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돈에 대한 이런 저런..(2012. 10)

kiku929 2012. 11. 21. 12:15

 

 

 

 

지금 우리는 산업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돈’은 핵심 키워드이며, 한 사회 한 개인의 가치관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어떤 가치를 갖느냐는 것은 그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을 결정하게 되며 그것은 개인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의 대답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돈이 가치가 되는 사회에서 그러한 질문에 순수하고 고귀하게, 정신적인 것을 답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점점 돈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돈과 상대적인 마음은 돈으로 인해 종종 상처를 받게 된다.

사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처의 이름만 알아도 절반은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상처에 대해 제대로 알기’, 이것이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1 화폐 경제 이전의 사회와 산업 자본 사회

 

화폐가 처음 생기게 된 것은 물물 교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화폐는 공통된 가치, 즉 일반성을 전제하고 있어서 모든 사물을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굳이 멀리까지 물건을 갖고 가지 않아도 원하는 물건과 손쉽게 맞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화폐 경제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직접적인 물물 교환을 통해 상호의존적이고 인격적으로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오늘날의 인간관계는 돈을 매개로 형성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을 비우는 며칠 동안 옆집에 잠시 강아지를 맡기거나, 집안에 갑자기 일이 생겼을 때 아이들을 보살펴 달라는 부탁은 이웃 간의 당연한 정(情)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런 일들은 모두 돈으로 환산 가능한 일이 되었다. 동물 호텔이라는 새로운 직종과 가사 도우미, 베이비시터, 간병인 같은 직업처럼 ‘시간당 얼마’라는 객관적 수치가 자리 매김 함으로써 개인의 친분만으로 어떤 일을 부탁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설령 부탁을 하는 경우라도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지, 계산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친분으로 주고받던 소소한 노동 –사실 노동이라는 인식도 없었지만- 모두가 돈으로 교환 가능한 것이 된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돈이라는 고리를 통해 엮어지면서 점점 고립되고 개인주의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고독하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2 돈이 가치가 되는 사회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의 문제점들, 즉 황금만능주의, 상대적 빈곤감, 부익부 빈익빈, 가치관의 왜곡에 따른 도덕적 타락 등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중 가장 근원적 문제라고 한다면 가치관의 왜곡을 들 수 있겠다.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고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다. 개인을 둘러싼 환경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가치는 개인의 삶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치며, 사회에서 요구하는 욕망을 자기도 모르게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돈이 가치가 되는 사회는 어떤 것일까? 우선 돈은 모든 결정에 우위를 점하고 목적

이 되면서 사람을 그 수단으로서 전락시킨다. 모든 일은 결과 중심이 되어버려 결과만 좋으면 과정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상처나 고통쯤은 얼마든 감내해야 하는 문제일 뿐이다. 범죄의 대부분이 돈이 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왜곡된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또한 한사람의 능력이나 인격은 그의 수입과 비례하여 인정을 받는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인 열등감을 갖게 되며 집안에서조차 무능력자로 낙인찍힌다. 좋은 직업의 기준은 오로지 한 가지의 잣대,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가’ 라는 기준으로 평가 되며,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면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정신을 높은 가치로 여겼던 시대에는 가난한 선비도 존경받으며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돈을 벌지 못하면 자존감을 지키기도 버거운 세상이다. 돈이 인간의 존엄성마저 좌우하는 것이다.

사회든 사람이든 어떤 한 곳에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쏟게 되면 다른 반대의 것에는 적은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 돈이 가치가 되면서 우리 사회는 희생이나 봉사, 사랑, 이해, 배려와 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채워주었던 정서들은 사라지게 되었고 인간은 섬처럼 고독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일상적인 삶은 편리해졌지만 개인은 늘 결핍감 속에서 살아간다. 현대인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3 왜 우리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가?

 

자본 사회는 바로 소비 사회이다. 현대자본사회는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체제 자체가 무너져버리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입장에서 이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 개인은 어떤 욕구를 가져야만 될까?

<광고와 에로티시즘>이란 책에서 저자 김덕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인간은 순응하는 사람, 끊임없이 소비를 원하는 사람, 취미가 표준화되어 있고 타인지향적인 사람이다.” P159

 

결국 우리는 사회의 한 일원에 지나지 않으며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알게 모르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6,70년대만 해도 근검절약은 사회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였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검소한 생활을 미덕으로 가르쳤고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상품이 주체할 수 없을 만치 대량으로 생산되는 요즘은 검소하게 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은 새로운 개인의 욕구를 창출해냄으로써 소비를 부채질 한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욕망에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다.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더 좋고 새로운 것에 대해 욕망하도록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욕망은 바로 나 자신의 욕망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진 욕망이다. 텔레비전 광고에서는 상품이 주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전달, 세뇌시킨다. 귀족적인 우아함, 자유로움, 타인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개성 등, 의도적으로 설정한 이미지를 상품과 연결시키는데 주력한다. 그래서 명품 백이나 신상품, 멋진 자동차가 없으면 마치 자신은 그런 이미지들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만 같은 소외감에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이제 인간은 그러한 것을 소비하고 소유해야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바로 나를 표현해주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명품 백을 손에 드는 순간 명품이 주는 이미지를 함께 소유하게 되고, 타인의 친절과 서비스를 받으며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라고 느낀다.

그러나 돈은 상품보다 언제나 우월하다. 돈이 물건으로 교환되어버리는 순간 돈이 주는 힘과 가능성도 함께 사라지면서 우리의 손에는 상품만 덩그러니 놓이게 된다. 다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유와 시간을 담보로 일을 하고 사업가는 노동의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돈으로 자신들이 만든 물건들을 소비하는 순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5 돈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고 살기

 

(1) 개인의 주체적 의식

 

자본 사회에서 돈은 곧 힘이다. 그리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폭넓은 선택의 기회와 보다 많은 자유를 보장 받는다. 나아가 돈은 타인의 친절을 사게 되고 개인의 존엄성을 지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왜 어떤 사람은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불행한 것일까. 그것은 돈으로 인한 빈곤감이나 열등감은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처럼 한 개인이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제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자신의 욕망이나 돈에 대한 생각은 고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지금 나의 욕망이 진정 자신의 욕망인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며, 그 욕망을 이루려는 열정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원이 된다. 그러나 그 욕망이 거짓된 욕망, 나도 모르는 사이 최면이 된 욕망, 마치 불빛을 향해 목적 없이 날아가는 불나방의 욕망은 아닌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돈이 주는 열등감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주체가 되는 것,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확고한 가치관을 갖는 것, 그러면 우리는 주체적인 소비를 하면서 자본 사회가 주는 장점인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더불어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2) 사회 인식의 변화

 

얼마 전 EBS 지식채널 동영상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난에 대한 설문조사가 인터넷에 올라온 적이 있다. 아래는 그 중 내용의 일부분이다.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

 

㉠ 집에 아픈 사람이 생겨서 - 6.5%

㉡ 돈 벌 사람이 없어서 -7.8%

㉢ 잘 배우지 못해서- 17.7%

㉣ 직장을 잃어버려서 -27.6%

㉤ 돈을 벌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서- 31.5%

 

그리고 이어 다음의 자막이 올라온다.

 

"가난이 태어날 때부터

인생을 거의 규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의로운가

 

'개인의 게으름 탓'이라고

가난한 이들을

자책하게 가르치는 것은 교육적인가"

 

- 박경현, 한국교육복지연구소 소장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이 없는 사람은 무능력자와 같은 동일어가 되었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가난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듯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부자인 사람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출발선상이 다른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는 바늘구멍 보다 더 작은 출세의 기회를 주면서 그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이 게으르거나 무능한 탓이라고 말한다. 마치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있다는 듯이.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일이, 부자가 유학을 가고 박사를 따는 일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불평등한 조건 속에서 개인에게만 그 책임을 돌린다는 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져야 하겠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인간은 그 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균형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문학이 홀대 받고 있는 현상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가난이 불평등이 되지 않는 사회, 약자의 편에 서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라면 정의를 위해 그나마 애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므로.

 

 

 

 

 

 

 

 

 

 

 

 

 

마치고....

 

 

 

나는 386이라 일컬어지는 세대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돈은 지금처럼 대단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돈보다 소중한 것이 마음이라고 믿고 있었고 설령 돈이 좋다고 생각해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뭔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누구에게나 있었다고나 할까.

특히나 우리 어머니는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상하게 하는 일을 매우 경멸하셨다. 돈이 있다고 사람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사람을 부리는 일을 가장 비열한 짓이라 생각하셨다. 어머니는 장에 나온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러 물 한 잔 청하면 꼭 마루에 올라와 쉬게 하시면서, 미리 끓여놓은 보리차를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대접하셨다. 일꾼들의 먹거리도 언제나 가족이 먹는 것과 똑같았다. 간혹 돈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언제나 돈으로 손해 보는 쪽을 택하셨다.

그렇게 자란 나는 아직도 돈의 위대함? 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돈을 준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마사지를 받거나 때를 밀게 하거나 하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돈 앞에서 치사해지는 이런저런 모습을 보노라면 가슴 깊은 곳에서 느꺼움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러는 나 역시도 돈이 없어 우울할 때가 많고 부자들을 부러워하는, 이런 이중적인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산다.

 

얼마 전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이 나왔을 때 제목을 보며 생각했다. 이 세상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돈이 전부가 아닌 세상,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귀한 것들이 여전히 많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