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딸 결혼식 축가를 불러준 '상원통사' 님의 블로그에서...

kiku929 2013. 1. 21. 09:53

 

 

 

[축하받은 축가]

 


30여년 전, 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 세상물정 모르는 재학생을 꼬셔서(?), 졸업식 1주일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으로 결혼을 하는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모두 모였다.

우린 진심으로 축하하는 박수를 쳤다.


그리고, 한 세대가 흘렀다.


한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사위의 손에 딸의 손을 건넸다.

똑 같은 자리에 섰는 데, 30년 전에는 신랑의 자리에서 신부의 손을 건네 받았고, 이제는 아비로서 신부의 손을 사위의 손에 건넸다.

우린 진심으로 축하하는 박수를 쳤다.


고등학교 1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음악시간이면 선생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고, 합창하고, 틀리면 지적받고, 다시 하고, 시험보고....

그 때도 난 노래를 잘 못했다.


37년이 지났다.

한 친구가 제안을 했다.

"야, 한석이 딸 결혼식에 우리가 모두 나가 축가를 부르는 것이 어떨까?"

말 잘하고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동의하기에, 난 싫은 내색도 못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강사는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현재 문화센터에서 성악강사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친구의 부인을 택했다. 그 자리에서 전화했더니 단번에 O.K이다

노래 곡목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생전 처음 들어본 제목이다.


두 번씩이나 만나서 선생님의 지도아래에서 피쏟을(?) 정도로 연습을 하였으나, 결론은 '우린 아마추어로서 만족하자' 였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모두 모여 마지막 연습을 하고 실전에 돌입했다.

신랑 신부를 앞에 두고, 강사선생님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하객들 앞에서 축가를 불렀다.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마음만으로 우리 모두 정성을 다해 불렀다.

음정, 박자는 알아서 새겨 들으리라는 믿음으로 불렀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할까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

아,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거야 ~~"


박수소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신랑신부 축하해주러 간 자리였고, 축가를 부른 자리였는 데, 느낌은 내가 축하받는 자리이고, 우리가 축하받는 자리인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음이 들떴다. 마치 3~40년 전으로 돌아가 선생님의 지도하에 학예회에서 박수받는 느낌도 들었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같이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이렇게 기뻐하다니...


우울증도 치료한다는 노래 자체의 힘일까?

어느 결혼식장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빠 친구들의 합창'에 대한 하객들의 박수의 힘일까?

그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집에 와서야 생각났다.

그렇다. 진심의 노래를 듣는 신랑 신부가 우리에게 화답한 미소의 힘이었다.

축하하러 간 자리에서 우린 기쁨을 맛보고 왔다.


아무도 생각을 못했을 때 친구 한석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첫 딸을 낳았다.

우리들 중 처음으로 자식 결혼을 시켰다.

신부 윤가영은 한석만의 큰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큰딸이기에 우린 기뻐했고 축하해주었다.


새 살림을 차린 신랑 이 영복, 신부 윤 가영,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살아가는 내내 기쁜 날들을 만드려 노력하길 바란다!!!


노래가 녹음된 동영상도 있으나, 차마 그 것은 올리지 못하겠다.

대신 노래부르는 모습만 올린다.

제법 프로의 내음이 풍기지 않는가!!!!

 

 

 

 

 

 

*

 

세상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산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은 나를 둘러싼 몇몇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 의해서 나의 세상은 따뜻해질 수도, 차가워질 수도, 암울할 수도,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그 몇몇 사람이 나의 온 세상인 셈이다.

 

남편의 친구들은 내가 대학 4학년때 처음 보게 되었으니 올 해, 햇수로 28년 째의 만남이다.

당연히 나의 세상이 되어주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주 얼굴을 보며 지내지는 못했지만 큰 일, 작은 일이 있을 때면 빠짐없이 함께 자리해준 사람들,

묵묵히 우리의 배경이 기꺼이 되어주는 사람들... 바로 남편의 친구들이다.

 

나의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을 옆에서 늘 응원의 눈길로 바라봐주는 사람은 모두 소중하다.

왜냐하면 시간은 어떤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 사람들의 존재는 내가 세상을 보다 더 잘 살아야할 이유가 되어준다.

 

사람 사는 일, 결국은 사람 속에서 웃고 우는 일이라는 것을...

곁에 좋은 사람 많이 두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세상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면

그래도 살만 한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