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미지에서..
등잔
신달자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 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시집 <아버지의 빛>,(문학세계사, 1999)
여자는 폐경을 하고나면 이브가 아니라는 말을 누군가 말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한 기억이 있다.
여성을 어찌 신체적 역할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건가.
나는 지금도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기도 하고, 첫사랑 이야기에 설레기도 한다.
내 안에도 등잔 하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들어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이 생각에서 시작하고 생각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그점이 바로 마음만은 영원히 여자라고 외치는 빈약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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