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사에 가면 볼 수 있는 흰둥이,.. 잘 지내고 있을까?
흰둥이 생각
손 택 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 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 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히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시로 여는 세상> 2004년 겨울호
그 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보신탕집 앞에서 팔려온 강아지가 창살로 된 상자안에 갇혀 낑낑 거리던 그 날,
그때 지나가던 나는 그 앞에서 강아지를 어떻게하면 구해줄 수 있을까를 궁리했지만,
열 살짜리 여자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을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강아지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결국 자리를 뜨고 말았다.
어렸지만 나는 돌아선 나의 등을 통해 세상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것이 무력감이라는 것을...
지금까지도 강아지의 눈빛을 기억하는 것은 나의 눈이 아니라 나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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