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이병률
나는 여럿이 아니라 하나
나무 이파리처럼 한 몸에 돋은 수백 수천이 아니라 하나
파도처럼 하루에도 몇백 년을 출렁이는
울컥임이 아니라 단 하나
하나여서 뭐가 많이 잡힐 것도 같은 한밤중에
그 많은 하나여서
여전히 한 몸 가누지 못하는 하나
한 그릇보다 많은 밥그릇을 비우고 싶어 하고
한 사람보다 많은 사람에 관련하고 싶은
하나가 하나를 짊어진 하나
얼얼하게 버려진, 깊은 밤엔
누구나 완전히 하나
가볍고 여리어
할 말로 몸을 이루는 하나
오래 혼자일 것이므로
비로소 영원히 스며드는 하나
스스로를 닫아걸고 스스로를 마시는
그리하여 만년설 덮인 산맥으로 융기하여
이내 녹아내리는 하나
*시집 <눈사람 여관> 문학과 지성사 ,2013
스무고개를 하는 것만 같다.
답은 '혼자'란다.
이병률 시인의 시에는 자주 혼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외로움이나 쓸쓸함, 슬픔에 객관적이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 혼자가 저 혼자를 바라보고, 저 혼자가 그 혼자를 바라보는...
혼자라는 자신과 또 다른 많은 혼자들이 각자 감정들의 방안에서
따로 살고 있으면서, 그러나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시인은 그 여린 하나들을 껴안고 시를 통해 몸을 만들 뿐이다.
그러나 그 시들은 '스스로를 닫아걸고 스스로를 마시는/ 그리하여 만년설 덮인 산맥으로 융기하여/
이내 녹아내리'고 만다.
자신을 마시며 영원히 녹지않는 산맥으로 융기하지만 이내 그조차도 지워버리고 마는,
그것은 어쩌면 완전한 혼자의 모습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완전성은 역설적으로 영원성을 획득하게 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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