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가을
이재무
움켜쥔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그렇게 네가 가고 나면 내게 남겨진 가을은
김장 끝난 텃밭에 싸락눈을 불러올 것이다
문장이 되지 못한 말(語)들이
반쯤 걷다가 바람의 뒷발에 채인다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사한 것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젖은 얼굴의 달빛으로, 흔들리는 풀잎으로, 서늘한 바람으로,
사선의 빗방울로, 박 속 같은 눈꽃으로
너는 그렇게 찾아와 마음의 그릇 채우고 흔들겠지
아 이렇게 숨이 차 사소한 바람에도 몸이 아픈데
구멍난 조롱박으로 퍼올리는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시집『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사, 1996)
어제 첫 눈이 내렸다.
제법 하얗게 쌓였다.
이제 누가 뭐래도 겨울.
시간은 그렇게 계절을 따라 왔다가
또 계절 따라 사라진다.
강물속 물고기들처럼
인연들이 시간의 줄기를 따라 헤엄쳐간다.
부딪치다가 멀어지다가,
날짜들은 수를 세면서 어디론가 향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곁에 있고
또 누군가는 멀어지는데
무대의 막이 내리듯
순간 겨울이 와버렸다.
내리는 눈 사이로
낙엽들이 떠돌고 있었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과 희망의 거리 / 김소연 (0) | 2015.01.07 |
---|---|
마지막 산책 / 나희덕 (0) | 2015.01.06 |
시집의 쓸모 / 손택수 (0) | 2014.11.26 |
침묵여관 / 이병률 (0) | 2014.08.08 |
감자꽃 따기 / 황학주 (0) | 2014.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