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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산책 / 나희덕

kiku929 2015. 1. 6. 00:09

 

 

 

마지막 산책

 

 

나희덕

 

 

 

우리는 매화나무들에게로 다가갔다

이쪽은 거의 피지 않았구나,

그녀는 응달의 꽃을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듯

입 다문 꽃망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땅은 비에 젖어 있었고

우리는 몇 번이나 휘청거리며 병실로 돌아왔다

통증이 그녀를 잠시 놓아줄 때

꽃무늬 침대 시트를 꽃밭이라 여기며

우리는 소풍 온 것처럼 차를 마시고 빵조각을 떼었다

오후에는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며

문장들 속으로 난 숲길을 함께 서성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죽음, 이라는 말 근처에서

마음은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피지 않은 꽃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침묵에 기대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기에

입술도 가만히 그 말의 그림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응달의 꽃은 지금쯤 피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다시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시간의 들판에서 길을 잃었는지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길을 잃은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문학청춘》2014년 가을호

 

 

 

 

 

 

돌아보면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 싶을 때가

가장 슬프다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내게 마지막은

더이상 기억하지 않게 될 때이다.

 

나에겐 헤어진지 십 년도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날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하루라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다.)

 

길을 걷다가, 

쉬이 잠들지 못할 때,

사는 일이 서러울 때,

특히나 나이를 먹으면서 앓게 되는 병들이 하나씩

찾아오게 될 때...

 

뒤늦게 이해하며 뒤늦게 사랑한다.

 

발자국 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그렇게 날마다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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