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책
나희덕
우리는 매화나무들에게로 다가갔다
이쪽은 거의 피지 않았구나,
그녀는 응달의 꽃을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듯
입 다문 꽃망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땅은 비에 젖어 있었고
우리는 몇 번이나 휘청거리며 병실로 돌아왔다
통증이 그녀를 잠시 놓아줄 때
꽃무늬 침대 시트를 꽃밭이라 여기며
우리는 소풍 온 것처럼 차를 마시고 빵조각을 떼었다
오후에는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며
문장들 속으로 난 숲길을 함께 서성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죽음, 이라는 말 근처에서
마음은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피지 않은 꽃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침묵에 기대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기에
입술도 가만히 그 말의 그림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응달의 꽃은 지금쯤 피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다시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시간의 들판에서 길을 잃었는지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길을 잃은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문학청춘》2014년 가을호
돌아보면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 싶을 때가
가장 슬프다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내게 마지막은
더이상 기억하지 않게 될 때이다.
나에겐 헤어진지 십 년도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날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하루라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다.)
길을 걷다가,
쉬이 잠들지 못할 때,
사는 일이 서러울 때,
특히나 나이를 먹으면서 앓게 되는 병들이 하나씩
찾아오게 될 때...
뒤늦게 이해하며 뒤늦게 사랑한다.
발자국 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그렇게 날마다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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