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침묵여관 / 이병률

kiku929 2014. 8. 8. 01:49

 

 

 

                                  이  꽃 속에 들어 잠시라도 쉬어 갈 수 있다면...

 

 

 

 

침묵여관

 

 

이병률

 

 

나는 여기에 일 년에 한 번을 온다

몸을 씻으러도 오고 옷을 입으려고도 온다

 

돌이킬 수 없으려니

너무 많은 것을 몰라라 하고 온다

 

그냥 사각의 방

하지만 네 각이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제 마음에 따라 여섯 각이기도 한 방

 

물방울은 큰 물에 몰두하고

소리는 사라짐에 몰두한다

 

얼룩은 옷깃에 몰두할 것이고

소란은 소문에 몰두할 것이다

 

어느 이름 없는 별에 홀로 살러 들어가려는 것처럼

몰두하여

 

좀이 슬어야겠다는 것

그 또한 불멸의 습(習)인 것

 

개들은 잠을 못 이루고 둥글게 몸을 말고

유빙이 떠다니는 바깥

 

몰려드는 헛것들을 모른 체하면서

정수리의 궁리들을 모른 체하면서

 

일 년에 한 번 처소에 와서

나는 일 년에 한 번을 몰두한다

 

 

 

 

 

 

 

역시 스무 고개같은 시...

 

시인에게는 왜 그런지를 묻는 것은 바보다

'그냥 그러니까'이다

 

답을 말했으니

나머지는 너희들 차례라고...

 

허허로운 공간에 홀로 세워두고서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침묵여관에 하룻밤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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