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꽃 속에 들어 잠시라도 쉬어 갈 수 있다면...
침묵여관
이병률
나는 여기에 일 년에 한 번을 온다
몸을 씻으러도 오고 옷을 입으려고도 온다
돌이킬 수 없으려니
너무 많은 것을 몰라라 하고 온다
그냥 사각의 방
하지만 네 각이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제 마음에 따라 여섯 각이기도 한 방
물방울은 큰 물에 몰두하고
소리는 사라짐에 몰두한다
얼룩은 옷깃에 몰두할 것이고
소란은 소문에 몰두할 것이다
어느 이름 없는 별에 홀로 살러 들어가려는 것처럼
몰두하여
좀이 슬어야겠다는 것
그 또한 불멸의 습(習)인 것
개들은 잠을 못 이루고 둥글게 몸을 말고
유빙이 떠다니는 바깥
몰려드는 헛것들을 모른 체하면서
정수리의 궁리들을 모른 체하면서
일 년에 한 번 처소에 와서
나는 일 년에 한 번을 몰두한다
역시 스무 고개같은 시...
시인에게는 왜 그런지를 묻는 것은 바보다
'그냥 그러니까'이다
답을 말했으니
나머지는 너희들 차례라고...
허허로운 공간에 홀로 세워두고서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침묵여관에 하룻밤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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