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어요?
배용제
몇 년 만에 만난 그녀가 내가 인사를 건넨다 잘,지냈어요? 그저 서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잘과 지냈느냐는 말 사이에 얼마나 아득한 벌판이 있는지 알고 있다
그 아득한 곳에서 얼마나 많은 길들이 지나갔는지, 몇 채의 검은 구름이 머물다 흘러갔는지,
또 수많은 꽃들과 싱싱했던 이파리들은 붉거나 푸른 피를 쏟으며 썩어갔는지, 수명을 다한
불빛들이 얼마나 많은 어둠을 토하며 죽어갔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벌판이 있다는 걸
묻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짐작할 수 없는 아득한 풍경들을 서로의 그림자 뒤로 애써 감추면서 그저 웃는다
그저 벌판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그 나무에 깃든 바람의 영혼처럼 흔들리는 시간들
너무 아득해서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서로의 풍경 속, 나무 한 그루에게 다시 인사를 건넨다
잘, 지내요
[다정], 문학과지성사, 2015.
잘 지냈냐는 말...
잘 지냈다는 말...
그 말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강물이 흘러갔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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