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건너며
박 형준
세월이 빠져나간 거리마다 아팠다
물을 건너며
나보다 한걸음 빠른 정적을 생각했다
그것은 물보다 먼저,
흘러간 절망감이었다
고요와 적막 속에서 훨씬 날이 어두워졌다
먼 바다에서는 바위틈에 갇힌 파도가 죽으며 말라갔다
내 음습하고 침침한 구멍 속에는 여전히 빛이 남아,
핏줄처럼 배고픔이 선명하게 꿰뚫고 지나갔다
빛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사는 듯싶었다
'내일이 멀었다'라고 말하는 당신의 가랑이 사이로
빠르게 달디단 뱀의 혀 같은 희망이 날름거린다
물을 건너며,
나는 남은 빛을 품고 꼽추처럼
내 품에 들어가 자는
낯선 정적 하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시집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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