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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값 / 이규리

kiku929 2015. 7. 11. 21:40

 

 

 

 

 

 

 

 

그늘값 

 

 

이규리

 

 

 

해운대 비치파라솔 한 채 오천 원,

멀리서 보면

멜라민 비빔밥 그릇들 엎어놓은 것 같지만

어쨌든 그늘값이다

오천 원 안으로 달짝지근한 몸뚱이들

슬슬 비벼지기도 하는,

 

그늘을  샀다지만 거기 무슨 경계가 있나

변덕스런 월세방 주인처럼

자꾸 자릴 옮겨 앉는 감질나는 그늘,

깐죽거리는 햇살 따라가다 보면

그늘은 파라솔 밖에 있거나 없거나

이 참에 달아오른 몸들도 물 속에 있거나 없거나

 

그늘은 그늘 아닌 데다가 그늘을 만든다

만질 수도 없는데 밀고 당기는 힘들,

마음 그늘엔 누가 자릴 차지하고 있나

접었다 폈다 하는 파라솔이 아니면

그늘은 원래 없었던 것

마음이란 것도 원래 없었던 것

 

그늘이 제 이름을 버리는 밤과 새벽이 있듯이

마음이나 그늘이나 오천 원이나,

자기도 모르게

접힌 바짓단에 숨어든 모래처럼

그렇게 들고 나는 것

 

[뒷모습]. 랜덤하우스, 2006.

 

 

 

 

 

 

마음이나 그늘이나 오천 원이나 들고 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마음의 그늘은 파라솔처럼 접기도,

그늘 밖으로 이사하기도 참 어려운...

 

그러나 결국은 파라솔 접듯이

태연히 제 그늘을 거두어야 할 때도 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