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윤가영
여름 신림동
이규리
다섯 평을 견디는 낮과 밤들아
너무 애쓰지 마
우리는 잊혀질 테니
식당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다
한 방향으로 앉아
꿈을 버렸느냐 그런 건 묻지 않는다
골목마다 반바지와 슬리퍼가 나오고
저 발들이 길을 기억하게 될는지
비참하지 않기 위해 서로 말을 걸지 않는데
그게 더 비참하단 걸 또 모르는 척한다
더위 정도는 일도 아니야
다섯 평을 견디는 이들은
세상이 그들을 견디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신림동은 산다 하지 않고
견딘다 한다
그래서 골목이 숨어라숨어라
모서리를 만들어 준다
나도 이곳에 편입해
순두부 알밥 부대찌개 사이 모서리를 돌 때
목이 메여
자꾸 목이 메여
목을 맬까 생각도 드는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본 선명한 장면이 잊히지 않아
한쪽 발에만 간신히 걸려 있던 삼선 슬리퍼
이건 끝을 모르는 이야기
갈매기처럼 한 곳을 향해 혼자 밥 먹던 이들아
슬퍼하지 마
우리는 잊혀질 테니
말없이 사라진 슬리퍼 한 짝처럼
슬리퍼조차 떠나간 빈 발처럼
-『시로 여는 세상』2015년 가을호.
*
세상은 더 편해졌다고 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더 고달퍼졌다는 생각,
특히나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꿈을 펼치기 위해 나아가야 하는 무대가 아니라
그날그날 먹고 살기 위해 사냥하러 나가는 밀림같다.
얼마전 꿀알바로 통한다는 '생동성 알바'나 '임상실험 알바'가 있다는 것을 알고 경악한 적이 있다.
시급이 6000원 남짓인 알바생들이 병원에서 2박 3일간 있으면서 알약을 먹고
피를 빼주며 관찰당하는 대가로 꽤나 높은 보수를 받는다는 데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건강한 몸이 재산인 젊은이들이 그 건강한 몸마저 지킬 수 없는 세상이 되었나 싶어서,
자존심이 사는일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란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내 주위만 보아도 자녀들이 알바나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취업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젊은이들이 점점 풀이죽어간다.
청춘이란 말이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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