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오빠가 보내온 사진- 눈에 찍힌 발자국이 새나 바람의 발자국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
강미정
읽던 시집을 엎어두고 찻물을 얹는 사이 새 그림자가 휙, 시집에 날아들었다 새가 시집을 읽고 갔다 갇혀있던 글자를 모두 물고 갔다 그 짧은 순간 시도 한 줄 써놓고 갔다 시집가득 눈부신 햇살이 적혀 있다
새가 날아간 쪽으로 끓고 있는 단어 하나를 날려 보낸다 침묵하고 있는 단어 하나를 날려 보낸다 몸은 자유로우나 영혼이 자유롭지 못했던 당신이 다녀간다 영혼이 자유로우나 몸이 자유롭지 못한 나를 다녀간다
끓인 물이 뜸 드는 이 삼 분 깃털처럼 가벼운 그 단어를 새는 날개에 새긴다 시인은 영혼에 새긴다
차를 우리는 동안, 새는 햇살 한 페이지 펴진 볏가리에서 꽁지깃을 까딱거린다 통통통통 경운기가 지나자 포르르포르르 떼를 지어 난다 낮게 난다 빠르게 난다 감나무 가지 사이로 쏙쏙 박히듯 빨려들어간다 감나무 잎이 파닥인다
우려진 찻물같은 당국화 멀티 메일이 도착한다 햇살 소복하게 앉은 감이 발그레 익는다 새가 날아오른다 환한 햇살 속으로 나를 물고 간다 빠르게 시집을 읽고 간다 시집 위에 그림자를 두고 간다 눈부신 소실점이 된다
*
우리집 거실 창에는 풍경이 걸려있다.
문은 거의가 닫혀 있어 여간해서 풍경소리는 들을 수 없다.
풍경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계절은 여름, 바람이 거세게 들어오는 날이다.
바람이 울리고 가는 풍경 소리는 정말 아름답다.
그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를 잠시 기억해내보지만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쉽게 떠오르지 않으니 '가장'이란 말을 써도 좋을 듯 하다.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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