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랑을 말하는 독특한 연애소설!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의 작가 황정은이 선보이는 첫 장편소설『백의 그림자』. 환상과 현실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연애소설로, 폭력적인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쓸쓸하고 애잔한 삶을 그리고 있다. 시스템의 비정함과 인물들의 선량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이 세계가 과연 살 만한 곳인지를 묻는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40년 된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두 남녀, 은교와 무재. 두 연인의 사랑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프고도 의연하게 펼쳐진다. 재개발로 상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내력이 하나씩 소개되는데….
<다음> 책 소개에서...
*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소개된 책이기도 하고 베스트셀러 작품이기도 해서 구입했다.
읽고 나서의 첫 느낌은 역시, 이유가 있구나!
책을 읽으면서 색다르게 느껴진 것은 주인공 '무재 씨'와 '은교 씨'의 대화 내용이 참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런 대화 방식이라면 기분 상하거나 싸울 일이 없겠구나, 하는.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배워보고 싶다.
말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은교 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는데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요.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책에서는 따옴표같은 것은 들어 있지 않다.
이 대화를 보면 상대의 말에 나의 어떠한 개입도 없다.
다만, 그렇군요. 네, ~한가요... 이런 식이다.
이것은 상담할 때의 대화기법이기도 하다.
이 대화를 보면 뭔가 부족한 듯해 보이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없으면
불가능한 대화일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덜 폭력적이었으면 좋겠다" 는 말이 나온다.
특히 언어가 갖고 있는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은교 씨는 슬럼이 무슨 뜻인지 아나요?
......가난하다는 뜻인가요?
나는 사전을 찾아봤어요.
뭐라고 되어 있던가요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 하며 무재 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누가요?
신문이며, 사람들이.
슬럼?
좀 이상하죠.
이상해요.
슬럼.
슬럼.
.
.
.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무재 씨는 말했다.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걸까요.
슬럼, 하고.
슬럼.
이상하죠.
이상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고. 라고 말해 두고서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이 대화에서 보면 슬럼. 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에는 개별적인 이야기는 모두 삭제되버린 채로
아무런 느낌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의도가 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관적인 이야기들은 상자속에 감추고 상자라는 사물처럼 총칭해버리는 식이다.
그것이 언어가 주는 폭력성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착한 사람과 그 사람들의 세상을 지켜주고 싶은 작가의 바람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동진의 책 소개에서 왜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고 했는지를 알 것 같다.
곁들이자면, 이 책은 소설이지만 서술적으로 쓰이기 보다는 시같은 양식으로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근거로는 문장부호는 최대한 쓰지 않고 있다. 개인의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자기 말을
남의 말 하듯이 대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설명과 독백이 없다... 등등.
이 소설이 짧으면서도 긴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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